기사검색
 

2018.10.20 (토)
정자나무 칼럼
문화칼럼
여행 칼럼
不惑, 知天命, 耳順
> 칼럼
2017년 09월 21일 (목) 01:41
소고기와 곰탕, 설렁탕

뉴욕한인사회의 소울푸드 곰탕, 설렁탕, 삼계탕, 보양탕, 탕, 탕, 탕 뉴욕 곰탕, 우촌 설렁탕, 강서회관 해장국

힘든 일을 할 때 우선 탕탕탕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기운 쓸 일에 앞서 운기조식(運氣調息)과 함께 "으쌰의샤"하느라 곰탕이나 설렁탕의 진한 국물로 몸에 힘를 꽉꽉 채운다는 뜻이다.열심히 일하고 포만감이 필요할 때 찾는 탕탕탕이다 보니 대개 점심으로 많이 먹게 되는 데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기 보다는 막역한 사이끼리 편하게 먹는 기운을 충전하기 좋은 음식이다.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는 사람들 얘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 곰탕은 소고기와 소 내장을 함께 끓인 국이고 설렁탕은 소 뼈와 소고기를 함께 끓인 국에 수육을 썰어 얹어 준다.  곰탕이 더 오래 끓여 진하고 설렁탕 국물은 맛이 입 속에서 오래 휘돈다. 곰탕은 살코기에 곱창, 양 등 내장이 듬뿍듬뿍 들어가고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사태가 들어가고 집마다 비법이 있다.

설렁탕은 임금이 선농단(先農檀)에서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풍년을 비는 선농대제를 지내고 소를 잡아 국을 설렁설렁 끓여서 밥과 술을 참석한 백성들에게 내렸는데 그 국밥은 설렁설렁 끓였다고 해서인지 선농탕이라 불러서인지 설렁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에는 대개 동네마다 고기를 제대로 오래 곤 진한 설렁탕집이 있었고 이들 중 아직도 대를 이어서 노포로 역사를 쓰고 있는 집들이 남아있다.  어릴 때 식구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심부름으로 주전자로 받아 와서 몸을 추수리는 보양식으로 먹던 곰탕 설렁탕은 뉴욕 한인사회의 Soul Food 1번이기도 하다.

 

뉴욕곰탕이 1979 27가에서 시작해 82년에 32가로 옮겨 본격적으로 곰탕을 끓여 댈 때가 한창 기운 쓰던 시절이었던 나는 사무실이 옆건물이라 20년도 넘게 점심약속에 없으면 거의 매일 곰탕 아니면 도가니탕을 먹는 날이었다.  당시에 곰탕을 끓이는 식자재로 사골이 드럼통에 담겨 밴트럭으로 가득 배달 될 때면 사골은 공짜이고 배달비용만 낸다고 자랑하면서 그동안 배달값이 두배가 되었으니 곰탕 값도 원가상승에 따라 두배로 올려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해 웃기도 했었고 설렁탕보다 오래 끓여서 국물이 하얗고 진하다고 같은 값을 받는 게 공평하지 않다며 공치사를 하기도 했다.  미국사람들이 먹지않는 사골은 당시에 미국인 고기가게에서 말만 하면 도끼질까지 공짜로 해 줘서 일요일이면 빨래하면서 큰통으로 끓여 놓고 콩나물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무엇이나 물 대신 사골국물로 콩나물국, 사골된장찌개, 사골국밥을 일주일 내내 먹었었다.  소고기 부산물은 거의 공짜로 식당 원가를 낮춰주던 시절에 한인1세의 뼈를 기름지게 채워준 소울푸드가 맞다.

 

미국에 와서 밥보다 많이 먹게 된 소고기는 우리 한식이 제일 맛있다.  스테이크도 좋고 훈제한 햄도 좋고 세계 각 나라의 소고기요리도 다 좋지만 간장양념으로 재서 구운 갈비는 미국인들을 불러 모으는 한미문화교류행사의 느낌표이자 마침표이었다.  요즘에는 훨씬 다채로운 음식종류로 잔치상에서도 예전보다 덜 오르지만 20세기 당시 행사 잔치에는 순전히 갈비를 많이 먹기 위한 다른 반찬은 조금 있을 정도로 모두들 소갈비로 배를 채웠다.  1997년 남전 금동원화백의 "한국의 미" 강연회와 워크샵을 가졌던 Long Island Univ. 한국문화행사 초청파티에서 처음 한국식 갈비를 먹어본다는 중년의 미국인이 다른 음식에는 눈길도 안주고 갈비만 갈비만 10번도 넘게 계속해 받아다 먹는 바람에 자리에 있던 한인들 모두가 "맛있지?" "맛있지?" 하며 옆에 앉은 미국인들에게 으쓱한 적까지 있었다. 

 

한국에서 소는 농경사회에서 농사의 힘든 노역을 나누어 진 중요한 가축이었고 선한 눈망울로 자신을 내세울 줄 모르는 품성으로 사람과 함께 살며 많은 옛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실제로 소를 키우는 집에서 소의 위상은 대부분 집안에서 가장 어른인 호주가 쇠죽을 끓여 아침상 여물로 주었다.  소는 집안에서 제일 높은 어른이 만든 아침상을 받는 위상으로 식구들 보다 먼저 받는 대접을 받았고 거처인 외양간의 위치를 보면 부엌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대부분이었으니 집에서 안방과 같은 귀한 신분이었다.  아마 인류사에서 이만큼 당당한 자격을 갖추고 대우를 받아 본 가축은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음식 식재료 신분에서 반려동물로 거의 집안의 막내같은 신분으로 급격한 신분상승을 이룬 개들과 거꾸로 바뀐 신세지만 인류사에서 제일 늦게 가축으로 길들여져 자존심이 꼿꼿한 낙타도 감히 비교가 어려운 신분의 동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에 와서 농기구들이 기계화되는 바람에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분이 노동계급에서 음식계급으로 낮아져 자연수명도 보장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동물농장 회원자격도 옛이야기가 된 식품 처지로 대부분의 사람들 시야에서도 떠나 있는 신세이지만 고향을 추억할 때 마을 곳곳의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하는 유일한 반려동물이다.

 

뉴욕 한인사회에서 아리랑하우스, 호반, 우리하우스, 고려정, 뉴욕곰탕, 강서회관, 우촌, 새집, 고향집, 갈비하우스, 삼원가든 등 한식 맛집들이 사라져 추억으로 남았지만 모두가 푸짐한 소고기 한식메뉴로 고단한 이민생활에 양기를 북돋아 준 맛을 보인 곳이다.  뉴욕곰탕의 진한 국물과 제대로 익은 김치, 우촌 설렁탕 국물과 겉절이의 먹고 나서도 입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감칠 맛은 주인의 고집으로 이룬 당시의 한국에도 견줄 맛을 찾기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  미국의 풍부한 식자재를 가지고도 도무지 한식의 맛을 완성하기가 불가능했던 당시에 한국 5천년 맛으로만 길들여진 고집스러운 이민1세들의 입맛을 위해서 고향의 친척들에게 부탁해서 농사짓게 해 햇볕에 말린 양념들을 직접 비행기로 이민가방으로 바리바리 들고 끌고 와서 집 차고에 들인 냉장고에 꼬불쳐 숨겨놓고 약처럼 아껴 쓰면서 지켜낸 한국의 맛이었었다.  

 

from an old timer in Korean Community of New York

이것이 지금 나의 신분 아닌가?

 
  커뮤니티
KOREA GALLERY
엘림자연농업
기영회(耆英會)
한인여행클럽
마을게시판
회사소개 이용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정책 제휴안내 광고안내
  TogetherUS.com Inc Copyright(c) 2005 togetherus.com/news All rights reserved.
Tel: F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