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 크루즈를 탔을 때이었다.  친구부부들끼리 연중에서 제일 싼 9월 비수기에 가게도, 애들 학교에 차를 태워다 주는 일도 모두 던져버리고 속세를 떠나 출가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술담배를 끊고도 버릇대로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고 저녁반찬이 안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침에 들어가면 깜깜해진 밤이 되어서야 겨우 나올 수 있는 블랙홀 같은 가게에서, 마주보는 것은커녕 숨소리도 자꾸 지겨워지는 애엄마의 얼굴에서 사라진 예전의 예쁜 구석을 되찾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뭉친 중년부부의 대탈출극이었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나서 하는 의례적인 질문에 술 마시냐? 안먹는다.  담배 피우냐? 끊었다.  교회 다니냐? 잘안다닌다고 삐딱한 대답을 했더니 일년에 3번 이상 여행을 다니지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던 친구가 앞장을 섰다.  가게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버티던 박사장부부에게 여행비를 자기 돈으로 내놓고 같이 가달라고 읍소까지 한 유사장의 엄살에 멱살이 잡혀 끌려 가게 된 진정한 묻지마 여행이었다.

푸에르토리코에 도착 해 일찌감치 승선수속을 마치고 방배정까지 받고 나자 다시 한 번 지구에서의 모든 일은 잊고 가자는 궐기대회를 했다.  해방감으로 상기 된 일행들이 모이니 아줌마들이 아저씨들 팔에 매달리는 뉴욕에서는 한 번도 꿈꿔 본 적도 없는 양태(추태의 반대말 맞나?)를 보인다.
일부러 매일 항구에 내리는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새로 시작되는 하루가 매일마다 새롭다.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선원들과 주변의 다른 승객들이 우리를 알아 보기 시작했다.  일부러 알리려는 적이 없었지만 몰려다니면서 고성으로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병에 걸린 아줌마들 때문이었다.  좋은 걸 어떻케, 괜찮아.
자신의 직업을 아마추어어부라고 하는 낚시광이 어느 틈에 의도적으로 친해 진 선원들과 섭외를 잘해서 배 뒤쪽 해수면과 가까운 갑판의 선원들의 작업공간에서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보다 고기가 많다고 장담을 했지만 항구에 접안한 배에서 하는 낚시는 생각처럼 먹을만한 생선이 올라오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잡혀 올 예정인 싱싱한 남국의 생선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의 의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개막식은 활어회로 하고, 폐막식 이벤트는 매운탕으로 정해 행사준비가 끝나 있었다.  창문이 제일 큰 방에서 쫘악 펼쳐져 있던 행사장의 해산식은 칼칼한 라면을 끓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견 되었다.  배의 앞부분에 위치한 방에서 끓여먹은 라면냄새가 배의 뒷부분에 위치한 방에서도 그 라면의 상표까지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나는 것이었다.  환기통이 연결되어서 심한 냄새는 커다란 뱃속 구석구석에서 모두 함께 맡을 수 있는 구조이었다.  라면냄새를 맡고 놀라서 달려 온 객실담당자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작은 한국공예품 선물로 무마가 되었지만 실행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 된 매운탕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경유지 아루바에서 내려 섬일주를 하는 관광버스운전기사를 꼬드겨 재래시장과 현지 주민들의 주거지를 들렀다.  남국의 섬답게 갖은 수산물과 열대과일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아줌마들의 본능으로 아무 대책도 없이 생선과 열대과일을 모두 양손에 하나씩 들고 배로 돌아 오게 되었다.  배에 돌아 와서 고민을 시작했지만 잠을 자는 방에서 우리들끼리 숨어서 할 수 있는 수준의 취사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은 해결특공대가 결성 되고 수천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주방장과 부주방장을 만났다.  부주방장은 그 동안 우리와 작은 공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우호적인 협조자세를 보였지만 권한이 없었다.  법적인 책임감이 강한 주방장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특별요리를 원하면 들어 줄 수 있겠지만 우리가 멋대로 현지에서 구입한  식자재는 배에 반입한 것부터 규정위반이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문제는 자신의 토속적인 식성을 민족적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승화하여 자신의 인격이라고 믿고 있는 최고령 멤버가 배에서 주는 세계적 최고급 요리로 유지 될 수 없는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인 식성의 편협함을 주장하는 데 있었고 교활하게도 우리 모두의 자존심인 뉴요커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필요하면 할 수있다고 추켜 세우는 데도 있었다.  만명이 넘게 탈 수 있다는 엄청나게 커다란 배의 선장 다음으로 높다는 사무장까지 우리의 생선회와 매운탕 거리를 가지고 협의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반입한 식자재를 자신들이 불용 처리(쓰레기 처분) 해 주겠다는 것을 대단한 조건인 듯이 들고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그들의 규정을 존중한다는 온건파, 무조건 그 처리는 내 뱃속에 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이리 저리 왔다갔다 입장을 바꿔가면서 말리는 중도파로 나뉘어 전략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우리에게 건설적인 제안을 해 왔다.  조건은 방에서는 절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라면도 끓여 먹었지만 살아 있는 새우를 사다가 샤부샤부처럼 전기밥솥에 물을 끓여 데쳐가며 소주파티도 거행했었다. 외부에서 우리가 반입한 식자재에 대해서는 배회사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즉 잘못 먹고 탈이 나도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서류로 만들어 서명하라는 것이다.  셋째로 보조 주방을 우리전용으로 무상으로 제공할 테니 거기서 요리를 하고 거기서 먹고 아무 것도 그 주방 밖으로는 갖고 나오지 말라는 제안이었다.  부주방장이 열쇠로 열어 준 우리의 전용주방에서 수시로 라면도 끓여 먹고 남국의 항구마다 있는 연안부두에서 사 온 갖가지 생선으로 한국식 매운탕도 끓여 나름대로 민족적 문화긍지를 지켰다.  부주방장은 우리 매운탕에 필요한 갖가지 양념과 감자, 양파 등을 지원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 지 궁금해 했다.  이 또한 한식의 세계화의 초석을 놓은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