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5반에 입학하면서…

지난해는 내인생에 있어 최악의 해이었던 것 같다, (아직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니 그래도 모른다).  지난해 8월9일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어머님을 가시고 싶어하던 충북 괴산 속리산 자락의 할머니스님이 혼자 계시는 사찰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다먹은 시각, 아주 급한 전화가 귀를 울렸다. 

“불 났어~, 어디여?”, 낯익은 공장 주인 목소리!  “엥?  무슨 불?, 어디에?”, 불 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뒤헝클어져 버려서, 내 자신도 무슨 말이 먼저고 무슨말이 나중인지 모르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숟가락을 던지고 무작정 차를 몰고 공장으로 향했다, 구름을 타고 가는지 주변의 광경이 희미하게 지나가며 순식간에 도착한 공장 – 나의 가장 어려웠던 3년이 담아져 있는 곳.  어둠이 덮히고 있는 시간인데도 왁자지껄하고 모여든 소방차와 경찰차 등등…, 엄청난 탄내, 그을림, 번쩍거리는 경광등 불빛…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건물의 장사장, 건물주인, 그리고 옆의 개척교회 장로님 동내사람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춰준다.  고마운 이웃들

불은 건물의 전기 인입선에서 스파크가 튀며 삽시간에 건물로 옮겨붙어 15분만에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버렸다고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장터, 아~!!  이런게 사람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이로구나…하며 잠시 정신을 차려본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사업이라는 것을 벌리면서도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그 시간이 머릿속으로 주마등 지나가듯이 스쳐간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알게 모른 여러 피해들…이번엔 도대체 뭐냐?  어떤 일을 하느냐?, 에이, 산사람 도와 주는 셈치고 한번만 도와 달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아온 지난 몇 년의 시간….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이 타버렸다.  사실 불나기 몇주전, 워낙 살길이 없어서 그 흔하디 흔한 ‘목매달어 죽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공장 안 기둥의 높이를 가늠해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연한 생각이지만, 내가 이리도 쉽게 인생살이에 기권해 버리고 나면 남은 나의 자식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기억해 줄까’하는 억울한 생각과 나의 인생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목매달기’는 포기 했었다.

사람이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는 곳까지 가게 되면 어차피 다시 상승운을 타게 되는 걸까?

지난해의 그런 일을 겪고 연말이 다가오며, 차츰 내 자신이 그렇게 원하고 추구해도 안되던 일들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해가 바뀌며,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암울하게 보이던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시 밝게 보이기 시작 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금전적으론 회복세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는 일이 재미있게 펼쳐지며 희망의 끈이 보인다.  지금까지 이런일 저런일 계획 없이 하던일들을 정리하고 이제껏 몸을 담아오던 반도체 재료 무역일을 하게됐다.  아시다시피 반도체 시장은 진입장벽이 아주 높아서 기술과 돈을 가지고도 할수 없는 일인데,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 했던 경험과 인맥이 오늘의 나를 다시 서게 해준다.

해외 수출대리점 일이 쉽게(반도체업계의 관행에 비춰 볼 때 – 다른 업계에서 볼 때는 山 넘어 山) 풀리고 있는데, 한가지 더 일생 일대의 제안이 들어왔다.

반도체 진입을 꿈꾸던 한 회사에서 영업고문 일을 해달라고 하다가 아주, 영업/마케팅 전문회사를 차려서 준다고 한다, 자본금과 사업자금은 그쪽회사에서 다 대고, 나는 반도체 에폭시기술과 국내외 영업만 해달라는 조건이다.  당연히 큰 조건 걸지 않고 그러마 하고 동의 했다.

지금 당장은 아직도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이제 희망을 기대하게 됐다.  5학년5반의 나이 먹은 놈에게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이젠 이런 저런 생각 안하고 한가지 일에만 매진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거기다 올해부터 반도체 경기의 상승세라고 하니…말이다.

희망이 생기고 보니 갑자기 마음이 또 급해진다, 이러면 안 될텐데 하는 우려가 앞서지만 말이다.  어머니 연세 84세, 한평생 한길만 걸어오신 순수 한국화 작가이시다.   어머님 신체 아직은 건강하시지만, 연세가 있어서 언제 자리보전하시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그전에 어머니가 항상 마음에 두시고 몇일에 한번씩 나가셔야만 하는 시내 한복판에 아트카페 플러스 화랑을 만들어 드리고, 미국에 계시는 어머님의 하나 밖에 없는 長男이 맡아서 운영을 하게 만드는 일이 급해지고 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