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이었던 것 같다.  명동 성모병원에서 찍은 아주 큰 X선 사진봉투를 들고 4월28일 일본항공을 타고 김포에서 도쿄로 그리고 몇시간 기다리다 아메리칸항공을 타고 하와이로, LA에 도착해서 LA 인근 롱비치에 살고 계시는 셋째이모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땅에 첫발을 디딘게 4월28일이고 거기서 딱! 1주일 냉장고에 꽉 들어찬 미국음식을 1년만에 깨끗이 청소 했다는 이야길 머리뒤로 들으며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도착한 것이 5월4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본다.

뉴욕 죤에프케네디(JFK Airport)에 아침 7시경에 내리며 착륙 직전 내려다 본 죤에프케네디 공항의 주변은 나와 형의 눈을 휘둥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활주로에 착륙하기 직전까지 이어진 주차장에 얌전한 모습들로 질서정연하게 있는 끝없는 자동차의 물결….., 난 착각하고 있었다.  죤에프케네디공항은 우리처럼 이민자들만 내리는 공항이고, 입국하는 가족들에게 그 많은 주차차량 중 한대씩 그 축복받은 미국정부에서 선물로 주기 위해서 갖다 놓았다는 것으로…나 원 참~~~쯧~쯧~!!! 그리고 역시 휘둥그래 내려다보고 있는 형에게 소리쳤다.  형~, 일단 색깔만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잣!

입국수속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한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 이름으로 준비되어 있는 영주권을 받고 축복받은 미국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환영객이 있는 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찾았다.  잠시후 우리 형제의 이름을 부르는 외삼촌의 둥글고 큰 얼굴을 발견했다.  아~! 삼추~운!!!

커다란 이민가방을 질질 끌며 공항건물 바깥으로 나온 나는 외삼촌께 물었다.  삼춘~, 우리차는 어디에서 받아요?  뭐라구?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삼촌에게 다시 물었다, 삼추~운!  미국이민오면 한대씩 주는 차는?  운전면허도 국제면허로 바꿔 왔는데요~~~, 외삼촌은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복고풍으로 생긴 옐로캡을 손으로 부른 외삼촌과 브루클린의 처치에브뉴의 외삼촌 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채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생소한 외국풍경이었다, 절대로 꿈꿔왔던 미국의 그 평화로운 동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중충하고 을씨년 스런 빌딩이 이어지는 어느 거리에 우리는 내렸다.  그리고 외삼촌이 이끄는데로 말없이 3층까지 그 커다란 이민가방을 질질 끌며 힘겹게 올라갔다.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아파트 내부, 덧칠을 여러 번 한 하얀페인트가 케켜히 덕지덕지 덮여있는 아파트 내부.  그리고 한국에서 보았던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 나오는 둥그런 곡선 모양의 오래된 냉장고.  LA에서 부터 밤을 새며 온 우리에게 외삼촌은 간단히 씻으라는 이야길하며, 뭔가 들여다 보고 계셨다.  그것은 뉴욕시의 관광지도였다. 안내도를 따라나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34가로 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우리는 별안간 사각의 세계에 갖혔다.  어떤 방향으로 돌아봐도 하늘은 큰키의 빌딩 사이로 길게 창으로 보는 것과 같이 보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들어간 우리는 외삼촌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런, 나도 한번도 와보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관광용엘리베이터를 타는지 찾을 수가 없네~’, 외삼촌은 이 사람 저사람에게 묻고 물어서 겨우 관광입장권 파는 곳으로 갈수 있었다.  그리고 87층까지 직행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장난이 아니었다.  고속으로 치솟으며 우리들의 귀는 멍멍해진다.  87층에 내린 우리들은 90몇층인가로 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벽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바깥의 풍경은 한겨울이었다.  그리고 불어치는 강풍….., 걸어서 몇 층인가 더 올라간 전망대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바로 구름속에 들어와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뉴욕관광은 저녁 늦게 맨해튼 남쪽 ‘자유의 여신상’에서 끝났다.  하루종일 걸어서 말이다.

다음날 새벽 우리형제들은 고통을 느끼며 잠이 깼다.  외삼촌께서 소리를 쳐도 일어나지 못하는 우리형제들의 몸을 발로 내질러 버린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잠이 안깨는 나와 형에게 휴전선 철책 근무하는 군인들이 입음직한 모자 달린 파커를 하나씩 주셨다.  어서들 씻고 일하러 가야 된다고 강한 의지로 말씀하시는 외삼촌.  참 서러웠다, 몇시간의 잠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우리형제들의 뉴욕생활 첫날!

아파트를 나와 가르쳐준대로 오른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던 우리 형제는 누군가 한국말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쳐다봤다.  “어~이! 네들이 미스터금 조카들이냐?  이리 들어와라”, 우리 형제는 말없이 야채가게로 들어섰다.  ”누가 형이지?”  그렇게 시작된 뉴욕 야채가게 노동, 형은 주인과 몇마디 말은 나눈 뒤 냉장창고에서 상품을 꺼내다 가게안의 진열대를 채우는 일을 맡았다.  난 가게밖의 채소 진열을 맡았고….

배치(?)된 가게 밖에서 ‘쌔~엥’ 부는 겨울바람을 맞고 서성거리고 있는 나에게 주인이 커다란 박스 몇 개를 핸~(드)츄럭에 싣고 나온다.  “어이, 자네는 내가 한번 시범을 보일 테니 똑같이 해서 이렇게 진열하고 물건이 떨어지면 내게 바로 바로 이야길 하게~”  물끄러미 주인이 보이는 시범을 보고 있는 나, 둥그렇고 커다란 나무통속에서 나오는 갓은 흙이 잔뜩 묻은 ‘시금치’(영어로;스피네취,spinach)이었다.   주인은 그의 커다란 손아귀로 할수 있는 최대한의 시금치밑둥을 모아 두께가 10mm는 됨직한 고무반도로 칭칭 동여맨다.  그리고 처음보는 스프레이로 수도물을 잔뜩뿌리며 흙을 씻어내고 밑둥을 칼로 섞둑 자른다.  푸라스틱밀크박스를 여러 개 가지고 나온 주인은 내개 그것들로 시금치진열대 만드는 시범을 보이곤 그중 한 개를 내게 내밀었다, 나의 작업의자 다.

새벽부터 시작된 시금치 다듬기와 진열은 대파와 홍당무 다듬기로 이어져 10시가 됐다.  주인이 안에서 부른다.  “어~이, 여기 들어와서 커피와 도넛 가지고 나가게~!!”  커피와 도넛을 받아든 나는 다시 가게밖으로 자가 나의 작업의자에 앉아 그것을 먹었다.  부드러운 도넛의 맛(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머니와 떠나온 수유리집의 따뜻함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 내리는 눈물이 커피컵에 떨어지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한결 따뜻해진 바깥 겨울(?) 날씨에 모아서 부비던 손으로 그때야 얼굴을 반쯤 가리던 파커의 모자를 벗었다.  아~, 길거리를 자유분방하게 오가는 색색의 사람들이 앞을 지나쳐 오가고 있었다.  오전에 준비한 진열물건은 점심시간 직전에 엄청나 속도로 진열대를 비워내며 계속, 여러 번 야채 다듬기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시장시간 전에 찾아온 약간의 여유시간, 주인은 미뤄놓았던 온갖일을 시킨다.  점심시간에도 안에서 일하는 형의 얼굴콧배기도 못 보았다.

오후 4시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 난다, 파커모자를 눌러 쓰고 작업의자에 앉아 시금치를 다듬고 있던 내 앞이 별안간 어두워졌다.  ‘누구야!, 나에게서 햇볕을 돌려다오~(디오게네스의 말)라며 속으로 외치는 나에게 흑인아줌마가 뭐라고 묻는다.  몸을 쓰는 눈치를 보니, 내가 다듬고 있는 시금치를 이곳에서 팔수 있냐는 것 같다.  그러나, 뉴욕 도착 하루된 놈이 무슨 뜻을 알아 들었겠는가?  잠시 기다리라는 뜻을 역시 몸과 손을 써서 전달하고 가게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데, 이런~! 추위에 몇 시간 무감각 해진 허리가 안 펴진다, 다리도 굳어있고.

가게안은 벌써 들어찬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주인아줌마는 알어서 팔으라고 내게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푸근하고 사람좋게 생긴 그 흑인아줌마에게 손가락으로 가격을 가르쳐준다.  49센트 x 4는 196센트, 그리고 100으로 나누기하면 완달러 96센트라고 말이다.   그러자 시장주머니를 열은 그 아줌마는 5달러(그전 어느땐가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길하며 20달러짜리를 받았다고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친구에게 사과와 함께 5달러짜리 지폐로 정정한다)를 내밀며 뭐라고 한다….가만히 보니, 잔돈을 가지라고 하는 것 같은데….쩝!  에잇, 도저히 안되겠다.  가게안 주인아줌마에게 쫒아 들어간 나는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흑인 아줌마와 뭐라고 큰소리로 대화를 한 우리(?) 가게아줌마는 내게 “그 아줌마가 네게 잔돈을 ‘팁’으로 가지라고 하니2달러만 가게로 주고 3달러는 네가 가져도 된다”라고 한다”, 그돈을 팀으로 받아들며 난 그 마음씨 좋게 생긴 흑인 아줌마에게 난생 처음 ‘Thank you’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들…..이런, 제기럴, 내가 이짓할려고 미국엘 왔나?

그렇게 금요일이 됐다.  ‘It’s payday’, 가게일이 끝나고 모든 점원(가게아줌마도 종업원인걸 그때 알었다)에게 이름이 써진 흰봉투를 하나씩 주며 수고 했단다.  잽싸게 봉투를 열어본 나는 금액을 세었다, 140달러(두툼했다).  그리고 형에게 물었다, “형은 얼마나 들었냐?”  잠시후 형이 내게 말을 해준다, “응~150달러 들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얼굴색이 벌개질 정도로 화가 솟구쳤다.  화가 잔뜩 난 주인에게 가서 따졌다, 왜 형은 150달러이고, 난 140달러이냐고…., ‘넌 동생이니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주인에게 난 외쳤다.   내일부터 난 안온다고……TBC(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