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화신 백화점 옆을 지나는데 유자(柚子) 구루마가 눈에 띄었다. 서너 군데나 되는 그 유자 구루마는 가을의 향취(香臭)를 가득 품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고학생(苦學生)인 성싶은 학생 장수에게 좋은 것 한 알을 육십환 주고 샀다.
노오랗게 익은 싱싱한 유자 알이 뿜는 향기가 수시로 코를 찌른다. 아마도 이런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때마침 일에 열중하고 있던 친구는 내가 내미는 유자도 별 반기는 기색 없이 그저 너 왔느냐는 태도였다. 그러는 친구의 태도가 오늘따라 못마땅하여 "이것이 싫으면 싫다든지, 아니면 60환을 내"라고 하였더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백(百)환 한 장을 무표정하게 내밀었다. 나역시 돈을 서슴지 않고 받아서 무슨 귀중품이나 되는 것처럼 주머니 깊숙히 넣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나와 버렸다.

결국 나는 백(百)환짜리 유자장수가 된 셈이다. 어쨌거나 난 즐거웠다. 아마도 짝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한다.

1960년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