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동(河回洞) 스케치

모든 시름을 거두고 아름다운 산천에서 신록의 향기를 온몸에 적시며 홀로 즐기는 멋이란...
한적(閑寂)에서 오는 정서는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세상의 재미로 알고 있다. 며칠 전에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河回洞)이라는 시골에 다녀왔다. 다행히 유서 깊은 곳이라 그림도 많이 그릴 수 있었고 보고 들은 것도 많았다.

다른 동리에서 볼 수 없는 고목이화(古木梨花)가 만발한 하회동에는 충무공(忠武公)과 함께 국난을 무사히 타개하셨다는 서애(西厓) 대감 유성룡(柳成龍)댁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기 한 달 전 선조 31년 정적(政敵)의 모함을 받아 나라의 중요한 때에 정계(政界)에서 물러나 하회동(河回洞) 상봉대(翔鳳臺)에 옥연서당(玉淵書堂)을 세워 후배 양성에 진력하시면서 난후잡록(亂後雜錄)과 징비록(懲毖錄), 그리고 서애집(西厓集)등 여러 권의 저술 생활을 하시다가 66세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유명한 곳이었다. 하회탈춤도 바로 이 지방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위선자, 비겁자들 등쌀에 착한 사람은 묻혀 버리고 세월만이 정·부를 증언해 주는 세상사가 머리를 잠시 흐리게 했다.

삼면에 낙동강 물이 흐르고 배꽃이 만발한 하회동은 역시 삼공(三公)의 직위에 오래 머물렀던 재상댁 고을인만큼 아름다운 전설과 뜻깊은 이야기 등이 후손들의 자랑거리로 되어 있다.

서애(西厓) 선생은 이조 중종 37년(1542) 10월 1일에 경상도 의성현 사촌리에서 태어난, 고려조부터 내려온 명문 집안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모친은 안동 김씨(光粹) 외딸이었다. 선생은 퇴계(退溪) 선생의 수제자로서 소골경풍(小骨 風)을 지닌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슬기로왔다. 활달하고 담대하여 일본놈들이 무서움을 탔을 만큼 세밀하고 빈틈없는 인격이었다고 들었다.

마침 날씨가 화창하여 그 곳 산천을 샅샅이 돌아다니다 서애(西厓)선생 공덕비 앞에 서서 잠시 머리 숙였다. 유유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혼자 마음속으로 그 옛날 어느 때는 일본을 짓눌렀는데, 오늘에는 우리 나라 입장이 왜 이리도 서글픈가 하고 쓸쓸해했다. 가지고 있던 '트랜지스터'를 틀고 하늘을 마냥 쳐다보며 마음을 달랬다. 유(柳)씨 집안 학생들과 옛이야기랑 서울 이야기 등 하면서 즐기기도 했다.

1965년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