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나라에 이민 와서 살고 있으니 남의 일이라고 넘겨 버릴까 하고 생각 하였지만...

한국에서 수성상(數星霜)을 제작생활(製作生活)만 지켜오던 양심적인 작가들의 거룩한 감정(感情)[즉 발끝까지 분개(憤慨)한]의 발언에 힘입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원래 나는 남을 비방한다는 것은 정력소모로 여겨 질색이다. 그러나 한국문화원의 처사는 작년에 연이어 참을 수 없는 무뢰한들의 짓이라고 그 누구나 말하고 있다.
충신의 본(本)은 못 받을망정 역적의 본(本)만 이어받고 있으니 양심적으로 한국에서부터 아첨않고 꾸준히 화도(畵道)에 정진(精進)하고 있는 순수작가들을 그렇게도 가지고 놀고 싶었느냐고 묻고 싶다.

개원 3주년을 맞는 뉴욕 한국문화원은 개원 초에는 아직 경험과 역사가 짧으니 다소의 실수가 있었어도 내 나라 내 민족의 일이니 눈감아 주었다고 하여둘까, 아니 모른 체 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3년이라는 연륜을 쌓았으니 한국에서의 잘잘못을 판단하면서 아울러 이 대국(大國) 미국이라는 나라에 새롭고 좋은 면(面)도 어느 정도는 알았으리라고 믿는데 갈수록 태산같은 난맥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일소해 버리기에는 정도문제다.

일개 한국여류화가로서 한마디 안뱉을 수 없는 일부 공무원들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에는 아연실색 안할 수 없다.
실망이 너무 커서 기어코 이 하찮은 내가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결심한 바 있어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하는 것을 너무 욕만 하지 말고 반성하여 주기 바란다.
국민의 세금으로 경영되는 정부산하의 문화원이 그 많은 비용과 좋은 위치 장소를 지니고도 이처럼 발전을 못보고 말썽과 비난만 사고 있는 이유는 담당자들이 너무 문화예술에 일푼 안목이 없고 더욱 말하지만 성의 부족이다라고 생각한다.

무슨 무슨 공연이나 전시회니 하고 신문에만 내놓고 문화예술의 대(貸)로서 사람을 부르려 하지 않고 리셉션 따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손님을 끌려는 상황이 너무 지나치며 사람 여나무명 앉혀 놓고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 사진들만 찍어서 문공부로 보고함으로써 마치 대단한 문화행사라도 한 듯이 연명해 나가려는 안이한 태도가 그 근본적인 병폐의 원인이라고 본다.

지금도 하고 있는 말썽의 재미작가 초대전도 처음에는 버젓이 공모전이라 하여 순진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놓고 갑자기 초대전으로 바꾸어서 그 대단한 전시장 하나 가지고 마치 국전인양 고자세로 나오는 담당자의 상식 밖의 오만한 태도는 작가들을 우롱하는 비열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다.
속담에 나오는 충신의 본은 못 따를망정 역적의 본만 받아 그렇게도 제 자신을 모르는 자는 처음 봤다고들 한다.
한 사람의 큐레이터가 단독 심사하는 예가 미국에서 종종 있어 그 본을 받았다지만 듣기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동양화는 모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 어찌 그리도 간단하게 주물럭거렸는지 또 한번 묻고 싶다.

적어도 그 많은 작품 수라면 미국서는 더 많은 더 유명한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심사하여야 되지 않았을까 말하고 싶다.
마치 미국에 마피아가 건재하니 한국에도 깡패 날치기들이 우글거려도 당연하고 좋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이면 다 좋고 미국에서 하는 일이니까 우리도 그 본을 받겠다는 그런 무식하고 무책임한 쓸개빠진 사고방식으로 무순 한국문화인 예술을 뉴욕에서 소개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그 지성과 양심이 의심스럽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개원 초에 전시한 나일론실로 줄들을 만들어 소리도 안나는 장난감 악기들을 전시한 그 악기 전시회며 이조가구 전시회라 해서 이것저것 아무 계통도 없이 잔뜩 줏어 모아 놓고 반드시 쌍으로 놓아야 되는 사방탁자도 외짝으로 전시하는 무식을 지적받고도 고치지 않는 오만불손한 고집은 어디서 배워 먹은 짓인지 모르겠다.

이민와 있는 선배들은 이제 아무 볼일 없다는 태도다. 다시 말해서 교포들에 대한 눈꼽만큼의 애정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심지어 81년도의 '지목(志木)'이라는 동양화 전시회 때 이야기도 해야겠다.
3주 예정의 전시회는 그나마 시켜주고 있더니 난데없이 서울에서 더 높은 사람 명함을 가지고 온 서예인을 위해 도중에 지목(志木) 이영찬의 그림을 불이야 살이야 걷어 치우고 신통치도 못한 금가루투성이의 글씨들을 걸어 놓고 와병(臥病)중이던 노산 이은상씨를 데려다 앉혀놓고 호화판 리셉션으로 법석을 떨고 며칠 후 다시 지목화(志木畵)를 걸어 놓고 전시회를 계속 했으니 도대체 문화원은 장바닥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상식밖의 관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관리라 해도 물론 관리는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마치 제 안방이나 거실의 그림을 떼었다 붙였다 하듯 하는 그런 대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의 그런 문화원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뉴욕만 해도 그림, 조각, 서예, 음악, 무용 등 각분야에 조예 깊고 또한 이미 정상급의 국제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예술인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의 좋은 조언도 받을 줄 알고 또 나아가서 좀더 충신의 본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서구 문화원들은 제쳐놓고라도 사정이 닮은 가까운 일본협회나 아시아협회 차이나인스티뉴트 등의 오랜 경험과 역사를 지닌 그런 기관 등의 행사에도 참석하여 그런 곳의 프로그램 편성을 눈여겨 본 적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다시 말해서 도시 상대방 쪽은 어떻든간에 생각지 않는 일방적인 처사라고 분개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많은 인력을 지녔으면서도 늘 전시회나 공연안내는 당일 아니면 겨우 하루전에 배달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고, 걸핏하면 먹고 마시는 리셉션에서 가야금이나 뜯게 하고 춤도 아닌 미치광이 광란짓을 그림 전시회에서 벌이는 것은 가장 새로운 첨단을 걷느다고 믿고 하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정도의 전위행동은 이미 50∼60년 전에 다 치루고 난 찌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거듭 말하지만 담당자들은 한국문화예술을 좀더 공부해야 한다. 모르면 급한대로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도 듣고자 하는 다소곳한 성의와 짜임새를 가지고 좀더 교포애를 가지고 하여야 할 것이다.

-뉴욕에서 19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