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3월인데도 설악산은 그 이름처럼 눈산(雪山)이었다.
설중(雪中)의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단신으로 타고 보니 공포감으로 마음이 약해진 탓인가, 동혈(洞穴) 앞을 지날 때마다,
『산신령님 안녕 - 제발 지나가는 이 여인을 보고도 못 본체 할 지어다.』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내원암에서 1.5킬로미터쯤 올라가서 계조암이 있다. 세 비구승이 있는 토굴에는 박쥐와 길이 5미터 가량의 구렁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저절로 온몸이 움찔해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시도 그 곳에 있는 것이 싫어, 스케치 2,3장을 하고 그 길로 하산을 서둘렀다.
때마침 흰눈이 내렸다.
어찌나 아름다운 선경인지 잠시간 무서움도 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생각에 잠겨 돌바위 위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1962년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