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최초의 여류화가는 나혜석씨가 아니고 백남순씨라는 사실이 평론가 이구열씨에 의해 밝혀진 것은 연전의 일이다.

백씨는 1928년 빠리 유학길에 올라 「싸몽 드 싸르뜨」(당시 프랑스의 관전)에 출품, 1930년에는 임용순, 백남순 부부 초대전을 동아일보 주최로 열기도 했다.

개화기 한국여류의 선구자였던 그는 오산중학 재학당시 「사라진 천재-이중섭」을 가르치기도 했다.
'64년 도미,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백씨는 구랍 19일 심장부정맥증으로 실신, 「엘름허스트」자택에서 요양중인데 여기에 게재하는 그림과 글은 여류화가 금동원씨가 쾌유를 비는 마음에서 기고한 것이다.

퀸스 성당의 퀸, 선배 백남순선생님

그래도 항상 그리던 서울의 1월 2일자 동아일보에 박근자(화가)씨의 글 「뉴욕에 계신 백남순선생님께」라는 글을 읽고 아픈 마음 금할 길 없어 저도 몇 자 적습니다.

엊그제 퇴원하신 후 아직 완쾌하시지 못한 선생님을 생각할 때 건강을 되찾아 오래 사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기미년 3월 느닷없이 왜놈 경찰에게 쫓겨 부군 임용연(임파)님과 개성을 거쳐 중국 남경으로 망명가셨던 선생님.
또 남경을 떠나 이승만 박사를 따라 미국으로 오신 것이 30여년 전 일.
민족과 예술을 위해 그 많은 외로움을 이겨 내신 선생님께 이렇게 글월로나마 엎드려 세배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저 유명한 이중섭화백의 스승이시었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곱고 아직도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하신 선생님. 흠모의 정으로 따르겠습니다.

지난해였던가요.
뉴저지 애틀랜틱에서 정다웠던 여로, 해변별장의 즐거웠던 일이 되살아 납니다.

옛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산천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세라. 시비를 여지마라. 날 찾는 이 뉘 있으리, 밤중에 일편명월이 내 벗인가 하노라.」

더러는 쓸쓸히 하느님만 의지하고 계신 선생님.
모쪼록 빨리 회복되시기를 임술년 정초에 빌고 또 빕니다.
그리고 올해는 선생님 가슴에 엉킨 수많은 사연들이 다시 선생님의 붓끝에서 되살아 나시기를 비옵니다.

선생님이 작품을 하실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헌신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임술년 정월 금동원 올림
미주조선일보 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