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산 법흥사와 오대산의 월정사, 상원사 등을 찾아 역사에 빛나는 국보와 유물의 진귀한 불탑 또는 불상, 기구를 구경하려고 태고의 전설이 하얗게 구름 낀 명산(名山)을 찾아든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스님들까지 모두 여섯 분이 동행하였다.   약간 찬 듯한 동짓달의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면서 가노라니, 온몸에 감도는 햇빛마저 우리들 일행을 축복하여주는 듯 날씨가 매우 좋았다.

나는 어찌나 기분이 상쾌한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맨 뒤를 따랐다.

먼 옛날 신라 황금 시대에 빛나던 고찰이므로 가지가지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중에 월정사 앞의 전나무를 30년 계약으로 일본인에게 팔아먹은 사람의 벌 받은 이야기는 최근에 있던 일로서, 해방되던 해가 마침 27 년째 되어 3년을 아쉬워하면서 쫒겨 간 왜놈의 뒤꼬리가 보이는 듯 저 멀리 절간 길이 훤하게 나 있었다.

이 곳  산간에도 초가삼간집이 있다.   오대산 깊숙이 들어앉아 사는 이곳 사람들은 일년 열 두 달 옥수수만 먹고 산다고 한다.   그리고 밤이면 산돼지 잡기에 바쁘다고 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무슨 고담 같기만 한 게 나의 귓속엔 잘 들어오질 않는다.   그리고 또 우스운 일은 이곳 색시들은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미처 못 먹고 친정을 떠난다고 하는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산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 전나무와 잣나무가 빽빽이 서 있다.   월정사에서 동승녀(童僧女)까지 세 사람이 남고, 남은 세 사람이 상원사로 가는 길은 새소리조차 없는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소록이 쬐는 산기슭에 시냇물이 굽이치며 흘러가고, 앞 산은 꽉 막혀 길은 가늘게 산등을 헤치고 보일 듯 안 보일 듯 과연 심산유곡이었다.

참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산길이었다.   생각에 잠겨 걷고 있던 나는 조금 가까운 데서 느닷없이 울려오는 초부의 도끼질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라 조심하여 보았더니, 산도둑의 벌목꾼 임에 틀림없었다.

큼지막한 키에 우악스레 생긴 사람이 커다란 도끼를 들고 멈추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전래 동화(傳來童話)에 나오는 산적의 무리 같았다.

동행하던 스님 말이 저 사람들은 나무 도둑들로, 전나무를 찍어서 남쪽으로 향한 쪽만을 토막쳐서 잘 말린 다음 보자기에 싸서 서울의 피아노 공장에 팔아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 나무는 피아노의 <키>판을 만드는 나무로 쓰기 때문에 매우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반가운 일이라고 하면서 초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요새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초부는 그래도 나라에 이바지하는 도둑인 까닭에 나쁘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주 먹어 버리지 않고 또 그 가난한 가운데도 한결같이 일함으로써 얻은 대가라고 좋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깊은 산속에서 쾅쾅 나무를 찍어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을 찾는 그 벌꾼의 생활상이야말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생은 아니기에 슬며시 유쾌한 인간상을 상상하여 보았다.

원시에서 문명도시를 오락가락하는 그 사나이는 우리들의 물음에 대답하여 상원사 길을 친절히 가르쳐 주고는 다시 쾅쾅 도끼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양이 믿음직한 남성미를 풍겨 주었다.

어디쯤 가다 걸음을 멈추고 조용한 마음으로 그림 한 폭을 그리고 있으니 산경과 산의 사연들이 아로새겨지는 마음의 안식처처럼 여겨져서 아주 좋았다.

나는 새삼스럽게 이 자연 산 속에서 실속 있는 생활의 빛을 의식하였다. 언제부터 인가 틈만 있으면 산으로 들로 헤매는 것이 나의 일이요 생활의 보람도 되는 까닭에 정신적, 물질적 면에서 무진장한 자연 강산을 경건하게 도둑질하고 다니는 것이 나의 멋이 되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감에 젖으며 그 것이 나도 모르게 덜 늙는 묘법이라고 믿고 정진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