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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27일 (화) 05:45
인도 천축국(天竺國)을 다녀 온 이야기 *윤봉춘(수필가)

한 반도의 15배 쯤 넑은 국토이기에 유명한 명소를 짧은 시간에 찾기는 비행기 또는 밤샘기차도 타야하는 고달픈 순례의 길이 인도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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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윤봉춘
          
    천축기행(天竺紀行)
        
    
          
    인도의 향불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강의 문명은 수많은 
    고대 종교의 메카였다. 
    지금은 11억 인구가 법석대는 세계 제 2의 인구대국인 인도여서 
    그런지 3월의 뭄바이 공항은 후덥지근하고 시끄럽게 닦아온다. 
    
    신라의 고승 혜초스님은 뱃길로 천축국에 도착하여 
    4년동안 인도제국을 돌아보고 육로로 천산산멕을 넘어 돌아오다 
    둔황석굴에 왕오천축국전을 남겨두고 타국 땅에 입적하였다.  
    스님 혜초가 지나간 발자취를 비행기, 기차 자동차로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오늘의 우리는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한국의 원로가수 현인이 불러 힛트한 <인도의 향불>이라는 
    노랫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감수성 예민한 십대에 
    이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는 인도라는 나라를 가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이제야 이루어 지나보다.
    
    
    갠지스강의 일출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소리/ 
    간디스강 푸른 물에 찰랑 거린다 / 
    무릎 꿇고 하늘에다가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 
    아 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인도의 국조가 인도들녘에서 혼히 볼 수 있는 
    공작새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았다.
    육이오 전쟁이 한창이던 전시의 와중에서도 한 반도에 갇히어 있던 
    민중들에게 멀고 먼 남쪽나라  인도에 관한 이 가사를 지어 
    이국적인 정서를 노래한 선배 가요인들의 안목은 
    지금 생각하여 보아도 감탄할 비약적인 상상력이었다.  
    
    6.25전쟁 휴전 후 SP레코드판에 찍어 골목 전파상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감수성 예민한 그 시절에 듣던 그 노래가 새삼 맴도는 것은 
    60년 세월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이다.  
    
      
    간디스 강 푸른 물의 새벽일출을 보고 초 저녘부터 
    강가에서 올리는 힌두의식의 염불도 들으며 인도로 
    고행 같은 서투른 여행길을 떠나본다.  
    파주라호의 사원에 있는 애로틱한 성애의 탑을 작사자 
    손 로원씨는 <파고다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였나 보다. 
    
    뉴왁 공항에서부터 열 다섯 시간을 날아온 긴 비행시간의 
    피로한 몸을 준비한 멜라톤닌 두 알을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잠자리는 인도답지 않은 깨끗한 호텔이어서 
    현인이 노래한 깊어가는 인도의 밤은 느끼지 못하였다.
    
     
    아그라성의 석주
    
      
    뭄바이의 첫날은 ‘게이트 오브 인디아’ 가 있는 
    광장에서 그 멋진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타지마할 
    호텔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뭄바이의 CST기차역과 더불어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2008년 11월 28일 이슬람 테러  공격으로 폭발 사고가 난 
    이후부터 인도 전역의 모든 호텔은 공항 검색대처럼 입구에서 
    짐 검사와 몸수색을 당하고서야 호텔을 출입할 수 있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는 테러와 파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데  
    앞으로 둘러 볼 인도의 힌두시대의 문화 유적은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화려한 힌두교와 불교의 석조물들은 모조리 
    팔 다리가 잘리고 얼굴은 이그러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인도의 재벌 타타그릅에서 세운 타지마할 호텔
    
    
    중세의 종교전쟁에서 기독교의 만행도 이에 못지않게 
    비정한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였으니 
    꼭 이스람만 탓 할 일은 아니다. 
    인류는 아집의 울타리 안에서 배타적 신앙관으로 
    얼마나 많은 이교도들을 서로 죽이고 죽었는지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지만 인류의 유사 이래 
    전쟁과 파괴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운 인류의 
    예술품이 넘쳐흘러있어  지구상의 모든 축조물들은 보고였을 것이다.  
    
    
    아잔타 석굴의 위용
    
    
    대영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기념하는 
    뭄바이의 <인도의 문>은 1911년 식민지 시찰을 나온 
    조지 5세와 메리왕비를 기념하기위하여 
    세운 문이지만 1948 식민통치의 마지막 보병대대가 
    이 문을 통하여 철수한 역사적 상징물로서 대영제국의 
    흥망과 성쇠 그리고 인도독립의 새 장을 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한 반도의 15배 쯤 넑은 국토이기에 유명한 명소를 짧은 
    시간에 찾기는 비행기 또는 밤샘기차도 타야하는 고달픈 
    순례의 길이 인도여행이다. 
    
    아라비아 해안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땀 개일 사이도 없이 
    국내선을 이용하여 오랑가바드 공항에 내려 인류 최고의 
    예술석굴이라는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을 상상하면서 
    호텔로 찾아든다.
    
    
    
    석굴에 부조된 부처님상
    
    
    동굴은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말하지만 석굴은 
    인위적으로 바위에 굴을 파서 조형물을 이름 한 것이다.  
    불교의 아잔타 석굴과 에로라의 힌두 석굴은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꼭꼭 숨어 있다가 
    1819년 영국인 사냥꾼 존 스미드라는 사람이 호랑이를 쫒다가 
    동굴입구에 새겨진 문자를 발견하고 모습을 드러낸  
    인도의 굽타 왕조시대의 뛰어난 건축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처럼 굴착공구도 없는 그 시대에 석굴 안에 3층 구조의 
    격실을 만들고 수많은 조각을 이루어 놓은 그들의 작품을 볼 때 
    그들도 아마 지금처럼 설계도라는 불르 프린트가 있었을까? 
    
    
    
    석굴안의 조각에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표현이 합쳐진 불상
    
    
    아잔타 석굴에서 특히 한국인들의 관심을 끈 조각 중 
    하나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누운 대형 와불의 베개가 
    한국의 전통 베개의 장식과 같다는 사실을 두고 수많은 
    한국의 학자들이 이곳의 침구문화가 한국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학설이 흥미를 더 갖게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옛날옛날 어린 시절 누님들이 
    시집가지전에 만들던 베개의 그것과 흡사한 흔적처럼 보인다.
    
    
    
    부처님이 베고 있는 베개
    
    
    후세의 발견자들이 석굴에 일련번호를 매겨 각 굴에 호수를 가지고 
    그 특성과 의미를 부여하고 연구를 하지만 관련 상식과 지식이 없는 
    일반 관광객으로는 그저 그 역사성과 예술성에 감탄만 하고  
    짧은 시간에 대표적인 석굴들만 돌아보고 내려왔다.  
    
    엘로라 석굴은 힌두교나 자이나교의 문화를 표현하였다는데 
    미술사을 공부한 적이 없는 우리는 5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그 많은 석굴들에 표현된 작품을 감상할 지식도 없고  
    시간적 제약으로 그저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지나친다. 
    
    일행  중 멀리 미네소타 주에서 오신 80대의 노부부는 
    무거운 DSL 카메라까지 목에 걸고 그 힘든 등산을 잘 이겨내고 
    보고 싶고 알고 싶은 욕망을 잘 풀어 가시는 것 같다.
    
    
    
    힌두의 엘로라 석굴 앞에서
    
    
     바라나시 
    순례자들이 영혼의 도시라 부른   바라나시를 가려면 
    엘롤라에서 기차로 20여 시간을 달려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 플랫홈까지의 이동도 전쟁 치르듯 
    한 바탕 겪어야 했다. 
    단선철도여서 앞서 가던 화물열차가 고장 난 바람에 
    다섯 시간을 더 기차에서 보내야 하였다. 
    인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한 사람당 2개 이상되는 트렁크를 계단을 오르내리는 
    플랫홈까지는 포터를 이용하여야 한다. 
    빨간 상의를 입은 젊은이들이 긴 스카프를 목에 두루고 자기가 
    운반할 트렁크를 맡으면 목에 걸친 스카프를 똘똘 말아 또아리로 
    만들어 50파운드 가까운 트렁크 2개를 머리에 이고 객차 앞 까지 
    날라다 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통치하며 깔아놓은 
    철도역에는 ‘아까보’라는 포터가 손 수레로 짐을 
    날라 준 것을 어릴 때 본 기억이 있는데 이곳 짐 나르는 
    포터들도 붉은 재킷을 입는 것이 영국식민 시절에서 유래 한 것 같다. 
    
    모방 잘하는 일본인은 그것을 본따 ‘붉은 모자’의 색깔을 
    영국에서,  근대화 과정도 영국을 본 따 입헌군주제로 자동차의 
    오른쪽 운전석도 영국에서 따 온 것 같다. 
    기차를 타려는 승객을 붙잡고 가격흥정을 하다보면 부르는 
    요금의 절반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는 그들의 고달픈 
    하루의 일과가 눈에 선하다.
    
    
    
    운반 할 짐을 고르는 포터들
    
    
    
    프랫홈의 과일행상. 
    
    어깨에 멘 저울로 달아서 팔고있다.
    야간침대차로 이동하면 여행사는 하룻밤의 호텔 비를 절약하는 일정 같다. 
    부사월역에서 인도의 서민생활의 한 면을 볼수 있다. 
    역사 안에 늘어선 매점들과 음식점, 목소리를 돋구어 외치는 
    아이스크림 장수, 벤치가 없는 플팻홈의 맨 바닥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는 아낙네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냄새, 손수레의 
    과일도 어깨에 맨 평형저울에 달아서 파는 과일행상들... 
    
    질서정연하고 휴지조각 하나 굴르지 않는 문명도시의 기차역과 대조하면 
    불결하고 소음과 무질서가 섞인 곳이지만 이곳을 이해하려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하면 이런 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3등 객차와 승객들 
    
    
    우리도 가난한 세월을 겪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유리창도 없이 창살로 창을 막은 일반석 열차와는 
    아예 통로를 막아놓는 두량의 침대차는 고급에 속하지만 
    쾌적한 공간과는 거리가 있는  실망 가는 객차였다. 
    칸을 가려주는 커튼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손 빠른 승객이 사냥을 하였다. 
    
    하긴 문명의 도시 뉴욕도 빈대가 창궐한다는 기사를 엊그제 읽었다.  
    하얀 침대 시트는 표백제를 쓰지 않은 탓인지 누렇게 변색되었고 
    모포는 낡을 대로 낡은 넝마 같았으나 피곤한 육신은 그 속에서 
    잠에 빠진다. 
    
    몇 년 전 타 본 센 피터스버그에서 모스코바행 야간 침대열차는 
    퍼질 대로 퍼진 몸매에 무뚝뚝하고 성난 표정의 제복을 입은 
    여 승무원이 서비tm를 하였지만 객실차창 앞에 생화도 꽂혀있고 
    치즈가 들은 스냌과 제공한 음식도 정갈하여   
    러시아에 대한 깨끗한 인상과 겹쳐진다.
    
    
    
    플랫홈 맨바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행복한 여인들
    
    
    모든 사람들이 바라나시에 온 이유는 갠지스강의 
    힌두문화를 체험하기 위하여 이다  뉴스와 TV 다큐에서 본 
    그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시간과 정력을 들여 떠나온 
    여행의 목적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간지스강의 일출을 보려면  새벽잠을 
    줄여야 하였다. 
    노숙자 와 임자없는 소들이 누워 밤샘한 지저분한 시가지 
    거리에 두어 평 남짓의 전통찻집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외관상으로는 불결하여 도무지 생각이 없는 찻집이지만 
    마셔도 배탈이 안나다는  안내인의 설득에 황토 흙으로 만든 
    일회용 토기 잔에 뜨거운 인도 서민들이 마시는 전통차를 마셨다. 
    
    
    
    전통 차를 서브하는 찻집의 사장님.
    
    
    새벽잠을 설친 빈속이라 따끈한 차 한 모금이 뱃속을 녹혀 준다. 
    일회용 토기찻잔은 그냥 길거리에 버려 깨뜰어 버린다. 
    예약된 나룻배에 오르니 갠지스강의 동녘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는 여명이 밝아진다. 
    
    강 언덕 가트(Gaht)에서는 푸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화장(火葬)이 시작된다. 
    상류에서는 화장을 하고 중류에서는 일출을 맞아 남녀 힌두인들이 
    성스러운 강물에 몸을 풍덩 적시고 하류에서는 건장한 남자가 
    빨래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화장터에서 긁어온 밑바닥 흙더미를 소쿠리같은 
    채반에 담아 연신 물에 헹구며 시신에서 나온 금속을 찾는 것 같다.
    
    
    
    빨간 불꽃이 이는 곳 마다 화장로이다.
    
    
    현인이 노래한 ‘간지스강 푸른 물에 찰랑 거린다’는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생존과 생활이 
    강물위에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사파(裟婆)의 강물에는  연꽃잎 위에 켜논 
    촛불이 조용히 흐른다. 
    
    이 엄숙한 힌두의 성지이지만 인도의 현지인들조차 
    지저분한 곳이라고 기피하는 불결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옛 고도(古都)에 고행을 맛보려는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열악한 
    생활환경을 무릅쓰고 몇 달간 혹은 더 길게 머물다가고 
    그 어떤 매력에 이끌려 다시 찾아온다는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가 
    나의 기억에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을것 같다.
    
    
    
    간디스강에서 목욕하는 힌두인들
    
    
    몸과 마음도 성수에 흘려보내고
    
    
    인도를 구경하고 온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아름다운 면 보다는 
    관료들의 부패와 빈부격차가 정말로 천당과 지옥만큼 차이 있어  
    어느 곳을 가나 가난에 찌들고 부정적인 면만 눈에 띠는 지라 
    정을 주기 어려운 실정이다.   
    시키리 성에 연인과 함께  휴가 나온 젊은 군인과의 짧은 대화 속에 
    비록 언어와 풍습과 얼굴외양이 다르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감정과 
    사고를 가진 똑 같은 인간임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광경중 하나는 초 저녘부터 
    열리는 힌두의 의식을 구경하러 가는 길의 혼잡은 지상 최대의 
    혼잡한 시가지로 기억된다. 
    묵고있는 호텔에서 릭샤를 타고 2마일 정도의 떨어진 간지스강까지 가는 
    퇴근길의 혼란은 표현할 수 없는 혼돈의 극치로 기억에 남았다. 
    
    
    
    인력거와 삼륜차와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대로.
    
      
    현지인들에게는 일상의 거리이지만 일본이나 한국에서 
    온 관광객은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쓴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의 경적, 가로지는 소떼, 잠시 
    한눈 팔면 밟히는 소똥, 개똥, 이것이 말라붙어 일으키는 
    흙먼지, 수 없이 늘어선 걸인들, 그중에서도 가슴 아리게 하는 
    불구의 걸인들을 냉정히 외면하고 지나칠 적이 제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핵을 보유한 강성대국도 이 가난을 구제하지 못할까? 
    이 나라도 새마을 운동을 도입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 
    힌두사회의 오랜 인습과전통인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도국민의 의식속에 남았있는 이 제도는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어 타파하기 힘든 현실이란다. 
    
    구습타파와 사회질서를 확립하여야 이 나라가 발전 할 것인데 
    어느 누가 개혁의 칼을 뽑아도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할지 
    머리 아프게 생겼다고 주제 넘는 생각도 하여본다. 
    
    
     카주라호 
    
    
    
    
    탑 전체가 성애상으로  장식된 파주라호 사원 원경 
    바라나시에서 국내선으로 30분 비행거리의 카주라호에 도착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후 ‘파고다의 사랑’을 가 볼 예정이다. 
    카주라호의 사원은 중세 인도의 위대한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힌두사원이라고 한다. 
    
    천 년전 찬델라 왕조의 한 세기동안 건설되었다. 힌두와 무슬림의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힌두의 종교성이 죄와 슬픔을 
    극뵥하도록, 깊은 절망속에 빠진 중생들에게 인간의 원초적 생명의 
    에네지인 사랑의 필요성을 역설하려고 이 탑을 세웠을 것이라고 
    어느 인문학자는 설명하기도 한다.
    
    
    
    인체의 비율이 사실적으로 균형 잡힌 후기의 작품들
    
    
    인도의 성전(性典) 카마수트라(Kama Sutra)는 
    기원전 6세기경에 당시의 신학자들이 쓴 성애서이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천 년 전 한 세기에 걸쳐 건설된 거대한 
    사원의 석탑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 같이 화려하고 애로틱한 석탑이 80여개가 있었으나 
    무슬림의 침공으로 모두 파괴되고 한적하고 외진 이곳만이 
    그나마도 남아있어 오늘날 세기적 핍쇼의 현장이기도 하다.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쇼라고 생각하면 우주의 시작을 
    남녀의 합일에서 시작한다고 믿는 힌두사상을 모독하는 불경한 말 일 것이다.  
    태양이 빛나는 한 낮이라 그런지 이 수천수만의 형태와 체위의 
    에로틱한 성애조각상을 보고도  얼굴 붉히는 사람을 보지를 못하였다. 
    
    
    
    눈썹화장을 하는 요염한 자태
    
      
    한 걸음 한 발짝 옳길 적마다 변화무쌍한 성애의 기교에 
    관람객은 감탄할 따름이지 음란한 생각은  들어올 틈이 없다.   
    원초적 인간 행위이기에 남녀노소 모두 부끄러움을 모르고 
    탄성을 지르며 예술작품에 달관한 초인처럼 속내들을 감춘다. 
    이 거대한 석탑에 새겨진 조각상이 몇 개나 되는지 
    통계숫자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카주라호에는 이 외에도 20여개의 사원이 산재한다는데 
    역사기행이 아닌 일정이라 유명한 카주라호의 성애사원이 관광코스의 
    하이라이트이다.
    
    
     아그라 (Agra) 
    인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다. 
    아그라시가 보유한 3개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가 타지마할이다. 
    무굴제국의 5대왕 사자한이 그의 왕비 뭄타즈마할의 죽음을 슬퍼하여 
    22년 동안의 긴 세월에 걸쳐 지어놓은 아름다운 무덤이다. 
    정문위의 22개의 첨탑이 오랜 공사기간을 말하여 준다. 
    죽은 자를 위하여 축조한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 이집트의 
    피라밋이라면 그에 버금가는 타지마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일 것 같다.   
    
    
    
    타지마할 묘
    
    
    멀리 500연 년 전  그 큰 대리석을 다듬어 돔으로 만든 
    건축술은 상상을 초월한 대 역사였을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서 죽어서까지도 
    이토록 훌륭한 유택(幽宅)을 선사 받았을까하고 세상의 
    아낙들이 부러워하는 무덤이고  남편을 다루는 기교가 얼마나 
    훌륭하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하는 유부녀들의 선망을 
    자아내는 무덤이기도 하다.  
    
    결국 오랜 공사의 재정궁핍으로 나라의 경제가 기울었고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되어 야무나
    (Yamuna)강 건편의 아그라성에서 8년간의 유배 끝에 사망하여   
    사랑하던 아내곁으로 돌아가 묻혔다고 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여기에도 들어맞는 말  같다.   
    
    
    
    아그라 성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천하를 호령하던 왕위를 아들에게 빼앗기고 그는 야무나 
    강 건너 아그라 성에 유폐되어 사랑하는 아내의 묘지인 
    타지마할을 바라보고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매일 슬픔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아그라 성 한 쪽 탑 모서리에 기대어 하얗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면서 사랑하였던 여인과의 추억을 더듬으며 권력의 허무함과 
    인생의 영고성쇠와 무상(無常)을 한탄하였던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멀지 않은 아그라성에서 내려다 본 타지마할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금도 애절히 남아있다.
    
    
    
    자이푸르 
    
    서쪽 고원지대로 이동할 수록 사막의 영향으로 먼지가 많아 
    호흡기가 약한한 사람은 목감기로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 
    사암지대로 핑크시티로 불리기도한 곳이여서 붉은색 
    석조건물의 먼지까지도 붉은 색으로 보인다. 
    
    바람의 궁전이라 불리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책자에 소개된 
    하와마할 궁전은 지저분한 서민들의 주택가로 포위되어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주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호화로운 아멜성 입구
    
    
    잘 정비된 유럽의 여러라의 궁전과는 인상이 다른 인도 고궁 모습이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여인들의 애달픈 전설과 같이 
    이곳 궁에서도 여자들은 바깥 세상의 출입이 금지되어 한 어린 삶의 
    현장을 도로공사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지나친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하긴 우리의 조선시대 왕궁의 여인들도 평생을 궁안에서 지내야야 했던 
    멀지 않은 역사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궁의 여인들은 자유인이 아닌 
    한중록(閑中錄)의 주인공이었나 보다. 
    
    
    
    분장한 인도여인
    
    16세기에 축성한 아멜성은 코끼를 타고 오르는 길과 찝차로 
    오른는 코스가 있다.
    인도의 상징인 코끼를 타고 흔들거리며 성으로  입성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혼잡을 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찝차를 이용하면 빠른 시간에 이동 할 수 있다.
    백 여 대의 찝차가 광장에 모여 호객을 한다. 
    아마 2차 대전 때 쓰던 각국의 찝차 전시장 같다. 
    낡을 대로 낡아 엉성하게 손질한 차에서 뿜은 매연과 경적과  
    요금을 흥정하는 소란으로 광장은 조용할 시간이 없다. 
    
    옛날의 성주들은 왕궁을 짓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으나   
    오늘의 가난한 후손들은 폐허된 성터에서 선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고달픈 생을 이어 가고 있다.
    
      
    
     델리 
    
    인도의 도시는 어디를 가나 역사적 유적이 많은 나라이다. 
    유일신을 섬기는 무슬림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수천 수많은 
    신을 섬기는 힌두를 그냥 둘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수 세기에 걸쳐 이슬람 제국을 세워 독특한 
    그들의 문화를 세웠지만  그들이 침공한 도시의 
    힌두문명은 깡그리 부시고 승리의 탑을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쿠트브 미나르 탑이다. 
    1193년 막강한 무슬림 세력이 델리에서 마지막 힌두 왕조를 
    무너트리고 그 자리에 세운 7층 석탑이다. 
    그 후 지진으로 꼭대기 부분이 무너지고  5층만 남아 있지만 
    그 위용이 지금도 대단하다. 
    
    힌두의 건물은 신상(神像), 인상, 동물상들이 들어가지만  
    이슬람 건축물에는 그들 문자나  코란의 문양만 들어있지 
    그림이나 형상은 없다는게 일반적 특징이라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쿠트브 미나르 탑
    
    
    끊임없는 이 민족의 침입으로 역사적 상처를 입은 도시가 델리이다. 
    영국의 식민지 새대에 인도의 수도가 되었다. 
    그후 네루 대통령 시절 뉴델리로 수도의 중심지를 옮겨 
    오늘의 인도 정치의 중심지가 된 국제적 도시이다. 
    사막의 영향인지 먼지가 많아 맑은  깨끗한 맛이 없다. 
    광대한 나라의 몇 개 도시를 둘러보고 그 나라를 안다고 하는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한 말이다.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엉켜 사는 혼돈의 나라같기도 하다. 
    아직도 원시적 농사를 짓는 낙후한 농촌 지역을 보면서 
    그들의 미래를 점 쳐 본다. 
    수 많은 걸인들이 관광객들에게  적선을 외치는 빈곤을 보고
    국가의 복지정책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새삼 느낀다. 
    
    외관상으로는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혼란한 나라이지만 
    세계의 수 많은 관광객이 이 나라를 찾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에  오늘도 인도의 국제공항은 붐비고있다.
    
    
    
    쿠트브 미나르 탑
    
    
    각 종교발원의 메카답게 이 나라에는 들어보지도 못하였던 
    정체를 잘 모를 종교가 많다. 
    인도 뉴델리 바하이 예배원은 연꽃사원으로 불리는 연꽃모양의 
    독특한 모양을 한 사원으로 어떻게 보면 시드니의 야외 음악당 
    형상을 하고있다. 
    
    
    크 연못가데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로 내부를 참관하니 개신교의 예배의식을 가진 성서와 계시들이 암송되고 기도하는 곳이나 1986년에 완공된 교회로 하느님의 유일성, 종교의 단일성, 인류의 일체성에 공식적으로 봉헌되었다는 한국어의 안내책자도 비치되어 있는 냉방설비가 된 현대식 교회 같다. 파나마, 서 사모아, 일리노이주, 우간다, 시드니, 프랑크푸르트에 교회가 있다는대 인도의 고대 종교는 아니고 기독교의 한 분파인것 같은데 깊은 내용은 잘 모르겠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코스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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