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국제의학세미나를 주관할 때이었다.  미리 준비한 일정이 호텔에서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별로 할 일이 없고 긴장이 풀렸다.  9박10일 동안 세계적인 의학자와 집중적으로 세미나와 워크샵을 하는 일정인데 유명한 만큼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는 열정이 넘쳐 아침부터 세미나가 끝난 저녁까지 모두들 호텔의 소연회장에 설치한 세미나실에서 밥 먹을 때 빼고는 나오지를 않을 정도이었다.  해변가 호텔의 앞은 그야말로 남국의 정취가 기가 막힌 해변과 유흥가이건만 의사들은 많이 배워서 명의가 되어 환자들을 잘 치료하고 유명해 지고 (돈도 많이 벌고) 싶어 밥 먹는 시간만 빼고는 산책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특급호텔이라 시스템이 잘 되어 미리 정해 놓은 것 뿐만 아니라 추가로 요구하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협조가 잘 되었다.  태국이 관광대국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아침에 호텔과 간단한 미팅을 하고나면 할일이 없어 시간제로 빌려 타던 제트스키를 친해 진 호텔직원의 개인 제트스키를 빌려 호텔 앞에 맡겨 놓고 수시로 혼자 바다에 가서 놀았다.  바닷가 잡상인들과도 친해져서 수영빤스만 입고 다녀도 외상으로 아이스케키부터 구운 계란까지 먹고 다닐 만큼 현지주민이 되었다.

공부에 지친 의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선 식당에서 우아하게 먹던 저녁식사를 수영장에서 수영복에 티셔츠만 입은 차림으로 근사하게 하는 것으로 바꿨다.  특급호텔이라 수영장이 여러 개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서 해산물 바베큐를 곁들어 호텔 나이트클럽의 예쁜 여가수도 와서 한국노래 두세곡을 부르게 했다.  처음에는 지천인 해산물을 굽고 열대과일까지 구워 먹으면서 물놀이에 신바람이 나더니 금방 시들해졌다.  공부에 지쳐 입맛들이 션찮아 모두 입이 짧았다.  차를 타고 나가 한국식당에 갈 수 있었지만 세미나가 시작되고는나갈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결국은 아침미팅에 호텔주방장을 참여시켜 김치찌개 끓이는 법부터 닭백숙과 같이 태국음식과 비슷한 것부터, 호텔에서 샐러드바에 내놓는 김치 등 구할 수 있는 것부터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적어주었다.  나중에는 현지거주 한인여행사직원에게 된장까지 얻어다 주고 된장찌개까지 먹을 수 있었지만 태국의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 태국식 된장찌개는 된장만 버렸다.  대신 김치찌개는 태국사람들까지 맛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처음에는 올리브유만 넣고 끓였지만 나중에는 소시지와 햄들을 쏟아 넣은 부대찌개로 진화한 김치찌개는 꽤 요염했다. 특급호텔의 호화로운 만찬식탁에 유럽제 고급도자기에 담겨 은국자로 떠먹게 준비 된  김치찌개의 자태는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쪽진 한국미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한복을 입고 있을 때는 맨어깨를 한번도 드러낸 적 없는 보름달같이 잘생긴 미인이 속살을 조금 보여 주며 수줍어하는 자태만큼 너무 이뻤다.  그렇지만 다음 날부터는 내가 할 일이 다시 없어졌다.  의사들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방장에게 직접 손짓 발짓하면서 요리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닭백숙도 처음은 태국향신료가 들어갔지만 두 번째부터는 한국식 닭백숙이 뼈를 발라 내는 그릇과 같이 식탁에 매일 등장했다.  한식의 세계화는 그 당시 씨앗이 뿌려 진 게다.

태국음식은 다양하고 음식재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입맛에 맞는 것을 찾아 먹을 수 있어 좋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어디에서나 풍성한 열대과일을 한없이 먹을 수 있어 황홀했다.  오죽하면 식당 매니저에게 열대과일을 먹다 죽을 수 있는 치사량을 물어 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