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먹는 일은 집에 있을 때와는 달리 여행의 한 축으로 추억의 주제가 되는 경우도 그만큼 많다.

파나마에 갔었을 때의 추억이다.  그 때도 엄청 할인 된 항공표를 발견 하는 순간 순발력 있게 전화 몇 통으로 친구부부들과 번개여행단을 꾸리게 되었다.  기껏해야 하루 이틀 만에 매진되는 특별요금으로 항공권을 구해 급조한 여행단은 다행히 호텔도 출발 직전에 예약할 수 있어 그나마 조금은 마음이 느긋하게 떠난 일정이었다. 

이번에도 부인들끼리 미리 공금을 만들어 뉴욕의 한국수퍼에서 산 밑반찬부터 한살림 바리바리 싣고 가는 것은 예외가 없었다. 

파나마에 도착 해 공항에서 첫 미션인 바가지를 옴팡 쓰지않고 호텔까지 가는 일이었다.  아줌마들은 제일 먼저 호텔에서 가까운 슈퍼마켓에 가서 물가를 대충 알아 보는 것을 시작으로 현지화 적응에 들어갔다. 아침과 저녁을 3박4일 동안 호텔에서 주방시설이 있는 방을 배정받은 박사장 방에서 해 먹는 한식구가 되었다.  

지역 수색을 나간 아저씨들과 재래시장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탁월한 친화력으로 순식간에 우리친구가 된 호세의 한국에서 수입 된  중고봉고차를 자가용으로 싼 값에 징발하였다.  봉고차를 타고 파나마운하 관광부터 오전에는 태평양에서는 수영하고 점심 먹고는 산을 넘어 대서양으로 이동 해 배와 낚시도구를 빌려서 낚시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같은 날 휘젓는 엄청난 일정을 보낸 첫날에 이어 다음날에도 밀림에서 나체로 산다는 원주민 가족을 방문하느라 뉴욕에 살 때보다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쁜 현지 일정에서 피난살이같이 전기밥솥 하나로 그 많은 식구가  자취로 먹고 사는 일이 절대로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웬 식성과 식탐이 갖가지인지 자기남편의 특이한 토속적인 식성을 기준으로 식단을 표준화하려는 아줌마들의 남편 사랑이 눈에는 안보이는 제법 치열한 전선을 형성했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따뜻한 공기층과 전기밥솥으로 끓여내는 찌개 종류에 따라 나타나는 한냉전선이 저녁끼니 때마다 이어졌었다. 따뜻한 온난전선과 차가운 한냉전선이 형성하는 불연속전선은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모두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폭우가 오고 뇌성이 치면 나름대로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돌아오기 전날 오후에 이 곳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에서 제일 비싼 음식을 먹자는 긴급제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몰려 가게 되었다.  무엇을 먹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식당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한냉전선은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오고 웃음과 우애로 동반적 관계가 살아났다. 

살아 돌아 온 우정이 마무리 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그 동안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뒷짐지고 차려 준 상을 받아 먹기만 해도 미울 판에 잔소리에 편식까지 하던, 그래서 모두에게  은근히 미움을 자초하던 마초맨이 뉴욕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 ‘하모니탕’을 끓여 놓고 모두를 깨웠다.  뉴욕에서 가져 온 것, 파나마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에서 사온 것과 심지어는 원주민이 농사진 것을 길가에 내놓고 파는 것을 사다 놓은 과일까지 몽땅 섞어서 창의성 있게 끓인 잡잡탕이었다. 끓여 가면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은 라면봉지에서 면을 남기고 사라진 라면스프의 빈봉지를 보고 알 수 있었지만 모양새로는 곤죽탕이었고 맛으로는 모든 이의 특이한 토속식성까지 아우르는 기능성 하모니탕이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맛으로는 훌륭한 역작이었다.  제일 많이 먹고 난 유사장이 얄미운 한마디를 보탰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역할을 다하는 걸레탕에게 경의를 보낸다고 했다.  하모니탕은 순식간에 자신의 희생으로 온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숭고한 뜻을 가진 걸레탕으로 명명되었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걸레탕을 먹게 만든 마초맨을 탓하지 않고 엄지손가락만 내밀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걸레탕이라니 너무 했다. 먹는 것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