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피곤하다는 사람들 뿐이다.

피곤하다는 말을 많이들도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피곤하다는 말을 많이들 하지않았던 것 같은 데 요즈음에는 조금만 지루해도 시쳇말로 영양가 없는 일을 하게 되면 대뜸 피곤해 못하겠다고 투덜댄다. 실제로 오지랖이 넓어 생기는 것 없이 바쁜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고들 한다.

함께 살아 가는 방식이 바뀌어서 남의 일에 참견하면 본전도 못건지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남의 일을 모른체 못하는 착한사람이 이제는 바보로 취급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드니 저녁 때가 되면 피곤할 때가 많아졌다.  재미나다 싶으면 밤도 새고 식음도 전폐하고 매달려 잠도 안자고 피곤한 줄 모르던 무지스러움은 마음으로야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지만 재미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피곤해 지면 살이 다 아파 천하 없어도 자야만 한다.

피곤해진 생명체가 다시 팔팔하게 되살아나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가 있다. 

휴식을 취해 새 기운을 충전하는 것이 첫째이고
잠을 자고 일어나서 심신을 일신하는 게 두번째,
그리고는 헌 육신을 버리고 새로운 개체에 유전자를 넘겨줘서 새로운 육신으로 새로와지는 것이 셋째라 할 수 있다.
잠시 쉬거나 조금 더 길게 반나절을 쉬거나 아니면 헌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동물은 사람도 포함해 앞의 두 가지는 잘하지만 세번째 것은 죽음이라는 과정의 두려움과 삶의 미련 때문에 태생적으로 스스로 할 수가 없는 데 식물은 세번째를 잘한다.

베란다에 놓아 둔 화분에 깜빡 잊고 며칠 물을 안주면 싱싱하던 줄기와 잎이 햇볕에 말라서 누렇게 변해버린다. 어느 정도 시들었던 줄기와 잎은 되살아나지만 한 번 시들기 전처럼 진한 녹색의 생명력을 완벽하게 되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잎사귀 끝이 색이 변했을 정도로 심각하게 말랐던 부분은 가차없이 포기하고 살릴 수 있는 부분 끝에서 새순을 키워내는 것을 본다. 즉 아직 살아 있지만 이미 기능이 떨어진 줄기와 잎을 버리고 새 줄기를 키우는 것이다.  미련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그 단호한 결단과 잔인함이 놀랍기만 하다.

화분 속의 풀뿌리가 행하는 선택과 집중을 드려다 보다가 문득 나를 비교하게 된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미련과 정(情)으로 키워 준 한국인의 유전자가 선택을 싫어하는 게 문제가 된다.  화분 속의 풀포기 같이 단호한 결단과 잔인하기만 한 선택의 미덕을 강요하는 미국문화 속에서 시달리는 미련을 못버리는 삶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소용이 끝나버린 작은 것 하나에도 사무친 추억 조각이 아쉬워 버리지 못하고 미국 서부로 하와이로 다시 동부로 끌어 안고 오간 미련 때문에 창고에 쌓여있는 헌물건들의 먼지 쌓인 냄새만이 온전히 내 것이다.

미국에 산 것이 잘 살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피곤한 저녁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