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고도 톨레도 출발하여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라만차 지방을 지날 때였다. 메마른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길 주위로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인공적으로 올리브를 재배하는 대단위 농장이었다. 지중해 일대를 다녀도 이 같은 올리브재배 농장을 보기란 쉽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그게 코르도바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올리브는 도대체 어디에 쓰인단 말인가.
  동행한 교포 운전기사는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올리브는 사막에서도 잘 자라 물이 귀한 그곳 사람들에게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로 대접받는 식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페인이 올리브 최대 생산국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라고 했다. 사실 그렇게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 입을 떼지 않자 그는 올리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얼른 생각하기에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땅이 건조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올리브 나무를 많이 심었답니다. 나무가 자라면 땅은 물기를 머금게 되고 그건 또 비를 내리게 하는 한 이유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올리브 나무를 심는 것은 사막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겁니다. 처음 이 땅에 올리브나무를 심기 시작한 사람은 아랍인들로 1000년 전의 일이랍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거죠. 열매를 따는 광경도 재미있어요. 바닥에 그물을 펼쳐놓고 막대기로 툴툴 터는 식이니까요. 그때쯤이면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이 몰려와 그 일을 돕곤 한답니다.󰡓
  이런 올리브 농장 덕분에 스페인은 올리브유 최대 수출국이 됐다는 것이다. 길을 달리다가 만난 조그만 휴게소에서는 올리브유도 팔았지만 올리브유로 만든 비누와 샴푸도 있었다. 그 옛날 로마인들이 긴장과 피로를 풀기 위해 올리브오일로 전신 마사지를 했다지만 지금의 스페인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피부를 다듬는 모양이었다. 몇 개를 사 가지고 왔는데 써본 우리 집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피부가 너무 부드러웠다고 하면서.

  내가 올리브나무를 처음 본 곳은 서아시아였다. 중동 말이다. 알고 보니 중동은 올리브의원산지였다. 그곳 사람들은 열매를 소금물에 완전히 절여 검은색을 띤 블랙 올리브 또는 덜 절인 녹색을 띤 짭짭한 그린 올리브 열매를 간식 삼아 집어먹기도 하고, 그들의 주식인 넓적한 빵으로 야채와 양고기를 싸서 먹되 올리브 열매를 양념처럼 들었다. 짭짤한 맛이 내 입에도 잘 맞았다.
  올리브 나무는 메마른 땅에 자라므로 뿌리가 깊은데, 그런 만큼 수명도 길다고 한다. 줄기에 붙은 껍질은 굵고 껄끄러워 마치 주름 많은 피부 같았다. 한눈에 강인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메마른 땅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을 자연스레 연상시켰다. 그들은 일 년 중 한 달은 해가 있는 낮에는 먹거나 마시지 않는 ‘라마단’을 지키며 자신을 단련시키지 않는가.
  중동 여행을 마치고 그리스에 들렸다가 그곳 사람들이 “올리브 나무만 보면 배가 부르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올리브가 그들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들은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밭을 일구어 올리브를 재배하는 농장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럴만한 평지가 부족해서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지금 생산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먹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던가.  
  올리브 열매는 절여서 간식처럼 먹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름의 원료로 쓰인다. 올리브기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열매를 수확한지 하루 이내에 짜낸 투명한 엑스트라 버진과, 한번 짜고 남은 찌꺼기를 다시 짜낸 버진,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과 버진을 섞어 만든 ‘퓨어’가 그것이다. 엑스트라 버진은 열을 가하지 않은데다 화학물질도 첨가되지 않아 말 그대로 순수한데, 그런 만큼 신선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버진은 재가공한 것이라 순도가 떨어져 비싼 쪽은 당연히 엑스트라 버진이다.    
  그리스 샐러드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엑스트라 버진을 드레싱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불포화 지방으로 비타민 A, B-1, C, D, E, K에다 철분까지 듬뿍 들어 있는 올리브유는 그 자체가 건강식품이라며, 올리브유가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춰 심장병은 물론 암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리스인들은 건강식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치료에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소화 불량이나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병원을 찾거나 약을 먹기보다는 올리브유를 듬뿍 친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감기가 자연스레 치유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일반 가정에선 일주일에 5kg의 올리브유를 소비한다고 하니 올리브유에 말아먹듯 음식에 넣어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올리브는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올리브유 하면 이탈리아인들도 어쩔 줄 모른다. 야채를 볶거나 익히지 않고 날 것 형태인 샐러드로 주로 먹기 때문에 식탁에 빠지지 않는 데다 그들이 죽고 못 사는 피자에도 이 올리브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피자를 구울 경우 밀가루 반죽을 둥근 막대기나 손바닥으로 눌러서 둥글게 펴고 그 위에 몇 가지 재료를 올려놓고 올리브유를 바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화덕에 올려 굽는 것이다.
  올리브나무를 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다. 물이 귀한 곳에서는 저런 올리브나무가 자라 그곳 사람들에게 건강을 지키도록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대신 동아시아에선 비가 많이 내려 벼를 재배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