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Abu Simbel)로 가는 길

그날 아스완의 새벽은 몹시 부산했다. 남쪽으로 280km 떨어진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으로 가고자 하는 차들이 한꺼번에 출발선상에 나와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 달리고자 해서였다. 이집트 역사상 위대한 군주로 손꼽히는 람세스 2세가 자신의 거대한 조각상 4개로 정면을 장식한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이집트를 방문했다면 꼭 찾아보아야 할 대상이다. 전날 아스완에 도착한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전날 호텔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다가와 ‘내일 아부심벨로 갈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예약금조로 얼마간의 돈을 받고는 쪽지 하나를 건네주면서 약속한 시간에 맞춰 호텔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겠다고 했는데,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 나를 불렀던 것이다.

내가 탄 미니밴의 승객은 모두 8명. 국적이 다 달라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아스완 경찰당국의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대형 관광버스와 미니밴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체로 본 인원은 4000여 명. 한마디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나 새벽 4시는 아주 깜깜했다. 어둠 속을 뚫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야 동이 텄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검은 색조의 황량한 사막뿐. 2차선의 아스팔트길은 그 사이로 마치 뱀이 지나간 흔적처럼 길게 나 있었다.

차가 달린 지 2시간쯤 지나자 동이 텄다. 사막의 지평선을 발갛게 태우는 일출은 정말 일품이었다. 주위가 밝아지자 누비아(이집트 남부와 수단의 북부지방) 사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사막은 요르단이나 시리아의 그것과는 달리 검다. 그것은 비옥함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나 음산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런 사막 위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달리는 자동차뿐이다.

나일강 위로 떠오른 햇살은 생명의 상징

아스완을 떠난 지 정확히 4시간 반만에 아부심벨에 닿았다. 차와 사람들, 그리고 음료수와 기념품 가게. 무어라 외쳐대는 ‘장사꾼’과 ‘안내원’들 때문에 매표소 입구는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입장권을 받아 쥐고 앞사람을 따라 조그만 둔덕을 넘어서자 바다같이 넓은 나세르 호수가 펼쳐졌다.

문제의 아부심벨 신전 또한 이 나세르 호를 바라보고 있다. 비스듬한 사암의 바위벽을 수직으로 깎아 만든 높이 33m, 폭 38m의 신전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4개의 좌상은 생각보다 크고 늠름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것만 얼굴과 몸통이 파괴되어 손과 무릎 부분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 3개는 상태가 양호했다. 조각의 주인공 람세스 2세는 ‘네메스’란 이름의 두건과 상․하 이집트를 통치하는 파라오(이집트 왕)답게 이중 왕관을 쓰고, 양손을 무릎에 올린 채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표정과 두건의 형태는 좌상 별로 조금씩 달랐으나 20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은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으면서 인체 각 부위간의 비례를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어 람세스 2세가 금방이라도 일어나 무슨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보는 이를 압도했다.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거대한 축조물과 현대 과학기술이 이룩한 성과물들을 두루 목격한 내 눈에도 거대하고 웅장하게 보였는데, 나일 강변에 갇혀 살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눈엔 저 거상은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모르긴 해도 무지하게 위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면은 람세스 2세의 조상으로만 꾸며져 있지 않았다. 벽면 제일 상단의 기다란 띠에는 학문과 지혜의 신인 비비(狒狒)가, 중앙 출입문 위의 벽감 속에는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고 있는 태양 신 라(Ra)가 새겨져 있었다. 또 좌상 옆 허벅지 높이에는 모후 무투이와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가, 양 무릎 사이에는 왕자와 공주 등의 모습이 조각돼 있었던 것이다. 많은 여인을 거느리고, 1백 명이 넘는 자녀를 두었던 람세스 2세는 그의 가족들을 끔찍이도 사랑했던지 이처럼 권속들을 내세워 신전 정면을 장식해놓았다. 힘들게 달려간 나는 결국 그의 가족 파티를 보려간 꼴이 됐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면의 좁다란 출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빛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먼저 커다란 기둥이 나타났다. 그것은 기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조각이었다. 저승의 신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가 기둥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둥을 신의 형상으로 다듬은 이 같은 형태를 신상주(神像柱)라 하는데 이 기법은 그 후 그리스 등지로 건너가 서양건축에서 생명을 이어갔다.

람세스에 대한 찬양은 8개의 신상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신전의 남․북 벽면에 그가 승리를 거둔 카데시 전투(기원전 1285년) 장면 등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한 발로는 적의 목을 짓밟고, 오른손으로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창으로 찌르기 직전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부조에서는 파라오의 용맹보다는 적군 병사의 고통이 먼저 느껴졌다.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병사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묘사되어서였다.

출입구에서 60m 안쪽의 지성소에는 람세스 2세의 좌상을 포함해 네 개의 신상이 조각돼 있었다. 그들 얼굴에 일 년에 두 차례, 즉 람세스 2세의 탄신일인 2월 22일과 그가 왕위에 오른 10월 22일 아침 6시를 전후하여 수분 간(5시 58분에서 6시 20분까지) 나일 강 위로 솟아오르는 햇살이 그곳까지 비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빛, 그것도 성스러운 나일 강 위로 막 솟아오른 싱싱한 태양의 빛이 생명을 선사한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었기에 이 같은 착상이 가능했으리라. 나는 이 사실을 통해 동해 위로 떠오르는 햇살을 받는 토함산의 석굴암을 생각했다. 일출을 바라보는 그 자세가 너무나 닮아서였다.

“여래(如來)는 공(空)이며 진리이다. 진리는 불변이며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비추므로 태양에 비유된다. 결국 여래는 비로자나가 되며, 그리하여 석가는 바로 태양이 된다. 그러므로 석가가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함을 상대하는 것은 바로 두 태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며, 석가여래와 태양은 서로를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강우방, ‘미의 순례’)

람세스 2세가 스스로 신이 되어 생명의 신이자 고대 이집트의 으뜸 신이었던 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밤새 죽었다가 새벽과 함께 다시 태어난 태양의 싱싱한 빛을 받도록 한 것은 그 자신이 생명의 화신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걸 생각해낸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여성적인 소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대신전과 소신전, 이렇게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신전은 대신전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람세스 2세가 아름다운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세운 것이라 그런지 너무나 여성적으로 보였다. 덕분에 나는 왕비의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Hator)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소신전의 정면은 4개의 람세스 입상과 두 개의 왕비의 입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서로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것도 사랑의 대화를. 이를 위해 왕자와 공주들도 동원됐다. 고대 이집트의 입상조각은 모두가 왼발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있는데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왕비는 소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귀엽게 보였다. 그녀가 오히려 미의 여신 하토르가 아닌가 할 정도로.

신전 내벽에는 네페르타리가 두 개의 뿔이 달린 왕관을 쓰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토르의 도움을 받아 대관식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소신전은 과시적이고 전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대신전과는 대조적으로 이처럼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곱슬머리의 비밀

각자 이리저리 흩어져서 신전을 둘러보았던 일행은 약속했던 11시 반이 되자 아침에 타고 왔던 밴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안내원 겸 운전기사가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돌아갈 때 햇볕을 받은 사막이 내뿜는 열기로 애를 먹게 되기 때문이라 하여 서두른 것이었다. 나는 간단한 요깃거리와 물 한 병을 사서는 차에 올랐다. 차는 곧 다시 사막 길을 달렸다. 모래밭 위로 수증기를 내뿜는 호수가 여러 차례 나타나곤 했는데, 그것은 신기루였다. 바깥 날씨가 워낙 뜨거웠던 것이다. 차안이라고 해서 바깥과 다를 게 없었다. 차체가 벌겋게 달아올라서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머리를 감쌌다. 한결 시원해졌다. 그때서야 열대지방 사람들이 왜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지, 그것도 모자라 두건을 쓰고 다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뜨거운 햇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데 직모보다는 곱슬머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달리다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낙타시장을 보게 됐다. 집도, 마을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낙타들이 떼 지어 시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승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장 가까이로 차를 몰고 간 기사는 한 달에 두 번 그곳에 낙타시장이 선다고 했다. 이곳 낙타들은 하나의 육봉을 가졌다. 중앙아시아나 몽고의 것은 두 개인데 반해. 등에 난 혹의 일종인 육봉은 지방 저장 탱크라는 것이었다. 낙타는 이 육봉이 있어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고농도의 소변을 몸밖으로 배출해, 수분 소모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라면서. 낙타는 주인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내게는 무척 신기해 보였다.

펠루카에 도전하다

아부심벨에서 돌아와서는 나일강 변으로 달려갔다. 아스완은 현대적인 도시라 길은 반듯하고 그 좌우로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폭이 넓고 물살은 느린 나일강의 도시 쪽 강변에는 유람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푸른 수면 위로는 고대 이집트 왕국 시대부터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돼 온 ‘펠루카’라 부르는 이집트 특유의 돛배가 떠다녔다.

그런 펠루카를 보자 그냥 지날 수가 없었다. 구릿빛 살갗에 건장한 체구를 한 사공은 흥정이 끝나자 하얀 돛을 하늘 높이 세웠다. 강 한가운데 있는 엘레판티네 섬으로 가는 사이, 여러 척의 펠루카를 만났다. 단체 관광객을 태운 대형 펠루카에선 경쾌한 누비아 선율이 타악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자세히 보니 일제히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춤판까지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때 사공은 저걸 보라는 듯이 내게 조용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1시간 여의 펠루카 여행은 오히려 감질 맛만 나게 했다.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강변에 줄지어 있는 유람선을 타고 나일강을 따라 내려가고 싶어졌다. 나는 아주 어릴 때(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다가 스웨덴(내 기억으로는) 해군사관 생도들이 졸업여행 차 나일강을 거슬려 내려가는 것을 본 데다 10여 년 전 ‘나일강의 살인 사건’이란 영화들을 통해 언젠가 나도 유람선을 타고 나일강을 여행해야지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어 코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나일 크루즈

유람선으로 가 룩소르까지 가는 2박 3일 코스를 140달러에 예약했다. 잠자리와 아침식사, 교통비가 포함돼 있어 결코 비싼 편이 아니었다. 배 이름은 누르(Noor). 다음날 오후 3시 30분. 누르는 룩소르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르는 호화유람선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그 정도도 충분했다. 강물은 속이 깊은 듯 푸른빛을 띠었고 양안으로는 녹색의 들녘이 펼쳐졌다. 때론 야자수 숲과 너무나 기름져 검은 색을 띄고 있는 밭, 그리고 누비아인들의 행렬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배에 탄 승객들을 향해 반갑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본격적인 항해에 들어가자 스피커에선 파발로티의 목소리에 담겨 카바레리아 루스티카나, 토스카...등 귀에 익은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그때 한 청년이 그에 따라 흥얼거렸다. 그는 콘스탄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파발로티와는 동향(볼로냐) 출신으로 지금은 런던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데 휴가 차 이집트를 찾은 것이었다. 그도 솔로라 우리는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

한낮이 되자 갑판 위에선 반라의 여인들이 몸을 태웠다. 우리는 그들과 얼마간 떨어진 자리에서 길게 누워 강변 풍경을 즐겼다. 보트유람은 오랜만에 내게 참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선사했다. 식사도 괜찮은 편이었다. 혼자 쓰는 방도 흠잡을 데 없었다. 저녁 식사를 끝낸 다음에도 우리는 달리 할 일이 없어 갑판 위로 올라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나뭇가지 위에서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잔잔한 수면 위에도 비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가 이백(李白)이라면 술 한 잔 하면서 시 한 수를 짓겠지만 그런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분위기에 흠뻑 취하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나일강 유람의 매력에 빠져버린 우리를 누르는 한밤인데도 콤옴보(Kom Ombo) 신전 앞에 내려놓았다. 달빛 조명 속에 드러난 신상 조각을 바라보는 느낌을 과연 무엇으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황홀하다는 말 외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게 유감일 뿐이다. 그런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또 하나의 신전을 방문해야 된다는 안내 방송이 있어서였다. 9시 30분, 에드푸(Edfu) 일행은 신전으로 올랐다. 그곳으로 가는 둑길엔 누비아인 특유의 요란한 장신구를 코와 귀, 목, 팔 등에 주렁주렁 매단 여인들이 좌판을 벌여 놓고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누르의 투어는 다음날 오전에야 끝이 났다. 고대이집트 왕국이 오랫동안 왕도로 삼았던 룩소르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나일강 유람은 내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새벽을 깨운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

룩소르에 도착한 나는 다음 날 새벽 미뤄왔던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을 찾아 나일 강을 건넜다. 최근에야 무덤 내부가 공개돼 ‘3천 년 전의 왕비’를 보려는 관광객들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왕비의 무덤이 있는 나일 강 서안은 투탕카멘왕의 무덤 등 신왕국 시대의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의 계곡’과 왕비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비의 계곡’, 고대 이집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벽화를 다수 간직하고 있는 ‘귀족들의 무덤’, 그리고 하트셉슈트 여왕의 장제전 등이 있어 이집트 제일의 관광명소다. 그러나 그 외관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눈에 띄지 않는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깔에 뚜렷한 윤곽, 그러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한 여인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3천 년 전의 네페르타리였다. 바깥의 황량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판인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는 현대여성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 여인을 감싸고 있는 시녀와 신성한 동물 그리고 여러 상징물들은 그녀와 잘도 어울렸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과 죽은 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자(死者)의 서(書)’ 등은 그들이 가졌던 예술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네페르타리 왕비는 지금의 터키 중부에 위치했던 히타이트제국의 하투실루스 2세의 공주였다고 알려져 있다. 히타이트 왕은 자신의 왕국을 정벌했던 람세스 2세에게 화해와 평화를 간청하면서 네페르타리를 바쳤다는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이미 반해버린 왕은 어디에 가든 꼭 왕비와 함께 했고, 그런 왕비를 위해 아부심벨에 소신전까지 세웠다. 왕비를 그린 벽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도 람세스 2세의 왕비에 대한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던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그런데 묘실 어디에도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람세스 2세마저도. 왜 그랬을까. 혹시 왕이 왕비의 아름다움을 홀로 지켜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왕의 지극한 사랑 덕분에 우리는  3천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왕비의 미소를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닌가.

 권삼윤

문명비평가, 역사기행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답사기인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한국의 건축 문화에 깃든 정신 세계를 '틈'이란 창으로 바라본 <우리 건축, 틈으로 본다>, 세계 각국의 문명 해석서 <문명은 디자인이다>, 세계 유명 박물관-미술관 답사기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 수천 년에 걸쳐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꿔 온 그리스 문화기행서 <꿈꾸는 여유, 그리스>, 세계 각국의 왕릉을 통해 시대의 생활상과 우주관을 살핀 <고대사의 블랙박스 Royal Tombs>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