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다.  땅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남이 장에 간다고 내 개성을 버리고 무조건 그를 따르려 하면 제 모습만 우습게 된다.  내가 고집쟁이, 그 것도 개성 있는 고집쟁이를 좋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제 것만 중요하다며 남과의 소통이나 교류를 거부한다면 그건 하층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제 나름의 멋과 효용성을 갖고 이 우주 속에 존재한다.  다양성이야말로 그 존재 이유인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친절한 사람도 있고 무뚝뚝한 사람도 있으며, 카메라나 스케치북 대신 오직 마음의 눈으로 그 모습등을 담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어떤 민족은 성질이 급하고 계산에 밝은가 하면, 심각한 것은 싫은지 대충대충 넘어가는 민족도 있다.  또 말이 많은 민족이 있는가 하면,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아끼는 그런 민족도 있다.  생긴 모습도 다양하고 사용하는 언어듸 리듬감도 서로 다르다.  이런 다양함 때문에 여행을 즐겨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지중해 연안과 서아시아, 그리고 중국 등이다.  서아시아는 인류의 문명이 태어나 꽃핀 곳이라 문명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지역이고, 중국은 동양 문화의 원류가 되는 곳인 데다 그 자체가 하나의 대륙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을 자주 찾는 것은 그 곳이 꼭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져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네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강하다.  그런 만큼 고집이 세다.  그렇다고 마냥 고집이 센 게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그런 고집쟁이이다.  그들은  남이 잘나간다고 부화뇌동하거나 박수 치며 따라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생활방식을 고수한다.  삶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듯이.  그들에겐 소득의 향상만이 삶의 목표가 아니다.  경쟁을 하되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win-win) 전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들이 참으로 좋다.

또 이탈리아인들은 열정이 강하다.  열정보다 더 멋진 창조적 에너지가 또 있을까.  그러나 열정이라고 해서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가시적인 것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내면을 태우는 열정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 내면의 열정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구두나 기계를 수선하고, 음식을 만들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서 열정을 빼버리면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발가벗겨놓은 진열장의 마네킹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알프스 이북의 사람들처럼 냉철함이나 치밀한 계산, 합리적인 설득 같은 것은 어울리지않는다.

그런 열정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은 말수 또한 많다.  말없는 사람과 사귀기는 어려워도 말 많은 사람과는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말은 소통의 도구이자 끈이므로 그 말을 통해 낯선 이들에게 말을 붙여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낯선 이에게 무작정 수다쟁이로 굴지는 않는다.  그러니 귀찮아할 일도 없다.  게다가 이탈리아어의 밝은 톤의 모음과 쌍자음이 귓가를 때릴 때 들리는 그 청명한 음색은 듣는 이의 가슴을 녹이고도 남는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유럽 여행의 첫 코스도 이탈리아였고, 그 곳에서 바가지를 쓰고 주머니를 털린 일도 있어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많이 남는다.  게다가 최근의 여행에서는 비토와 안토니아 부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여러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도 들었으니 더울 기쁠 수 밖에.  모두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모쪼록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열정적이고도 따스한 심성을 지닌 이탈리아 사람들을 많이 만나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권삼윤
2005년 6월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 책머리 작가의 말 –

2005년 7월1일 첫판 1쇄 펴냄, 권삼윤지음 ㈜도서출판 푸른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