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뉘어진 것은 언젠가 하나로 합해지고, 합해진 것은 언젠가는 여럿으로 나뉘어진다." 그러므로 분단된 국가는 통일을 열망하게 마련인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최근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독일, 베트남, 예멘 등 분단된 국가들은 모두 통일의 길을 달렸고, 소련이나 유고 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은 민족 단위로 다시 20여 개 국가로 나뉘어졌으니 말이다.
  통일은 단순한 지리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뿌리가 같은 민족이 기계적으로 합쳐지는 것도 아니다. 정신적으로 하나라는 인식을 갖고 통일된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마음의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한 집에 살면서 '솥 따로, 이불 따로'라면 한솥밥 먹는 가족이라 할 수 없듯이.
  이 점에서 독일 통일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동독 국민들은 처음엔 "우리는 민중이다."라고 외쳤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부르짖었다. 통일의 당위성과 함께 나뉘어진 나머지 한쪽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는 독일 민족 전체가 한 마음을 갖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다음은 이웃나라를 설득하여 나치 독일에 대한 악감정을 누그러뜨리는 일이었다. 이는 '동방정책'을 추진했고 폴란드를 찾았다가 유대인 희생자 묘지에서 무릎을 꿇었던 브란트 총리로부터 줄곧 이어져온 서독의 외교 기조였는데, 후일 자기 손으로 통일의 열매를 딴 바 있는 기민당 출신의 헬무트 콜 총리는 '개인 외교'까지 구사했다.
  우선 동독에 20만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초청했다. 그는 라인 강변을 거닐면서 독일 통일의 당위성을 고르비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독일 통일이 절대로 유럽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확신시켰다. 고르비도 그 점만은 인정했다. 통일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부시 미국 대통령(현 대통령의 부친)과는 거의 매일 밤 전화로 불러내 우정어린 협조를 부탁했다.
  그런 콜 총리가 가장 많은 정성을 기울인 상대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관계가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서독 총리들도 프랑스 측의 파트너와 개인적인 접촉을 다지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콜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테랑 대통령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는 그때 그때의 현안들을 논의했다. 그것도 모자라 국경 근처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부부 동반으로 만나 마치 술친구처럼 넥타이를 풀고 밤새워 대화를 나누고 춤도 추었다. 이런 '인간적인 만남'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시간이 가장 큰 설득의 무기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러던 어느 날, 콜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가족사를 미테랑에게 털어놓았다. "나에게는 형이 있었어. 내가 참 좋아했고 또 존경했던 인물이었지. 그런데 그 형이 2차 대전 때 전선으로 끌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네. 우리의 슬픔은 너무도 컸지. 그러니 우리 집안도 전쟁의 희생자야. 나는 그 형을 잊지 않으려고 내 두 아들 가운데 한 아이에게 형의 이름을 잇게 했지."
  숙연한 모습을 보이는 미테랑을 바라보며 콜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런 내가 어찌 침략을, 전쟁을 생각할 수 있겠나. 독일 국민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걸세. 모두 전쟁을 싫어하고 있다고."
  이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두 나라는 미국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하지 않았다. 
  그때 두 사람은 조용히 손을 잡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미테랑 대통령은 독일의 통일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프랑스의 공식적인 입장이기도 했다. 두 나라 국민들을 갈라놓았던 마음이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동서독이 하나로 되는 데는 그 뒤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통일이란 것 자체가 상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듯이 통일 작업 또한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면 친구가 되듯이 통일도 그렇게 찾아오는 것임을 독일 통일은 잘 보여주었다. 우리의 통일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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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문명비평가 겸 역사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