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면 먼저 어머니의 따뜻한 정성이 떠오른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윤기가 흐르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고루 익은 밥을 잘 지었다. 특히 배고플 때 먹는 밥맛은 기가 막힐 정도다.

어머니는 밥을 짓기 위해 먼저 쌀을 씻어 솥에 넣고 불을 땐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밥물이 솥뚜껑 밖으로 흘러 나온다. 밥 냄새가 솔솔 날 때쯤이면 불을 끈다. 뜸을 들이기 위해서인데, 밥물이 밥 속으로 푹 스며들어 잘 익고 밥맛을 좋게 하는 작용을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불을 다시 뗀다. 그런 후 밥주걱을 들고 솥뚜껑을 열면 김 사이로 투명한 밥알들이 나 보란 듯이 반질반질 빛나며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를 풍긴다.

밥을 짓다 에서 ‘짓다’는 ‘집을 짓다’, ‘시를 짓다’ 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작업을 뜻한다. 우리 민족은 밥을 생명을 창조하는 일로 본 것이다.

한국인은 밥 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그걸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아침’ 또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지만 연세 지긋한 분들은 아직도 ‘밥’이 들어가는 인사말로 나름의 애정과 관심을 나타낸다.

“밥은 먹었어?”

“밥은 먹고 다녀?”

전통사회에서의 경제는 쌀과 직결되었고, 세금도 거기에 근거해 매겨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쌀이 몇 가마니’ 식으로 물가나 상품의 가치를 표현했다.

사실 동양의 왕조사는 벼농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새로운 세력이 일어나 왕권을 교체했고, 그 과정에 참여한 자에 대한 논공행상을 위해 전제 개혁을 실시했다. 고려의 전시과, 조선의 과전법 등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 땅을 침탈한 일본도 제일 먼저 실시한 사업이 토지조사사업이었고, 해방 후 남한에서는 농지개혁,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각각 단행했다. 이처럼 밥은 우리에게 있어 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건강의 원천, 연륜의 상징, 국부의 근원이었으므로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은 밥 힘으로 산다는 말이 절대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밥은 빵과 짝을 이루어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왔다. 밥의 재료인 벼는 비가 많이 내리면서 20도 이상의 고온 다습한 날씨가 연중 절반 이상 계속되는 몬순(계절풍)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어 왔다. 연간 강수량이 1,000밀리미터 이상이고, 생육기간 150일 동안은 18도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수확기에는 날씨가 건조하고 쾌청해야 한다는 벼 재배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벼는 재배할 때와 마찬가지로 밥을 짓는 데도 물이 많이 소요된다. 물 없이는 밥을 만들 수 없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던가.

밥은 불을 떼서 짓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증기를 이용해 찌는 것이다. 찌는 조리법은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양고기 찜 요리와 밀가루에 소량의 물을 붓고 반죽한 후 찜통에 넣어 찌는 쿠스쿠스 외에는 달리 찾기 힘들 정도로 벼농사 문화권 특유의 조리법이라 할 수 있다.

밥은 찌면 밥알이 마치 풀처럼 서로 엉겨 붙는다. 이런 모습은 찜 요리나 쿠스쿠스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런 만큼 끈끈한 삶은 벼농사 문화권 사람들의 기본 생리이다.

또한 인구밀도마저 조밀하다. 중국은 13억, 인도는 11억 이상이며 베트남,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등도 단위면적 당 인구가 상당하다. 중국의 최대 도시 충칭은 하나의 도시인데도 3,000만 명의 인구를 자랑한다. 이처럼 공간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사이도 가깝다.

원래 차진데다 쪄서 짓고, 따뜻할 때 먹는 밥의 성질을 닮아서인지 한국인들은 매우 끈끈한 성미를 가졌다. 그래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 간의 끈끈한 정리를 ‘식구’라는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빵 문화권에서 이와 비슷한 말은 ‘컴패니언 companion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 즉 동료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후’ 불면 날아갈 정도로 풀기 없는 안남미는 얘기가 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남미, 즉 ‘인디카’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풀기가 아주 없는 쌀이 아니다. 얼마간 끈기가 있고 부드럽다. 덥고 습기 많은 그런 기후라 음식물이 쉽게 상할 수 있으므로 밥물이 끊으면 그걸 쏟아내 버린다. 따라서 찰기가 떨어져 밥을 먹어도 금방 시장 기를 느끼게 되고 한꺼번에 많이 먹게 된다. 또한 밥을 먹을 때에도 맨밥으로 먹기보다는 볶음밥이나 카레로 만들어 먹는다. 이는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태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넣고 볶은 ‘카오팟’이란 볶음밥, 인도에서는 커리, 베트남에선 쌀국수를 즐긴다.

전 세계 34%인구의 주식은 쌀은 단위면적 당 수확량이 여느 재배 작물보다도 많고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처럼 풍부한 영양소 때문에 ‘밥’만 제대로 먹을 수 있다면 먹고 사는 문제는 일단 해결이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쌀은 일찍부터 주식 대접을 받아왔다.